마가복음과 신학 다시 하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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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마가복음--정치적으로 읽기', 출판에 앞서 '에필로그'를 더했다. 


에필로그

 

예수는 누구인가? 이 책의 원고를 읽은 출판 관계자로부터 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간단히 그리고 쉽게 정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은 멀게는 ‘하느님’ 이해와 맞물려 있고, 가깝게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오래 전에 어느 목회자 연장교육에 초대 강사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놀랍게도 대부분 참석자들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인입니까?

 

유대인도 하느님을 믿으니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회교도들도 하느님을 믿고, 또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아이구, 하느님’하면서 하느님을 부르는데, 이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대부분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그들이 믿는 신은 야훼이고, 알라, 혹은 다른 신을 믿는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만이 진짜 하느님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절대자 하느님의 이름이 있다손 처도, 그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하나님’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야훼가 아니고, 알라가 아니라는 논조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신/하느님을 말할 때, 그것이 존재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신의 문제이지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신을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신을 거론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이 정립되고 그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과 행동이 결정된다.

 

혹자는 계시 종교를 말하는데, 일단 서구의 이해와 정서가 그렇다고 치고 ‘신의 뜻’을 누가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가? 이에 따라 서구의 아브라함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갈린다. 이중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유대교에서는 모세가 하느님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믿는다. 같은 것을 이슬람교는 모하메드에서 찾는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무분별한 이해에서 ‘예수가 하느님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보다 분명한 이해로 다가선다. 예수가 하느님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말을 복음서 용어를 빌어 표현하면,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라는 선언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예수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예수는 어떻게 살았는가’ 라는 질문은 그의 실천과 행동윤리를 묻는다. 예수는 스스로 하느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 여겼고, ‘하느님의 믿음’과 가치관을 자신의 삶의 푯대로 삼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스스로 메시아(그리스도)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우선 메시아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하나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메시아와 구세주를 혼동하거나 혹은 ‘메시아는 구세주라는 뜻’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구세주는 말 그대로 ‘The savior of the world’—세상을 구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당시 로마제국 하에서 로마 황제에게 부쳐졌던 칭호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만 ‘구세주’(ὁ σωτὴρ τοῦ κόσμου)라는 말이 등장할 뿐(요 4:42; 요일 4:14) 다른 곳에서는 그냥 ‘구주’(σωτὴρ)라는 말만 쓰였다. 히브리성서에서 백성들이 하느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구원자’(מוֹשִׁיעַ)를 보내 전쟁의 위협에서 나라와 백성을 구한다(삿 3:9; 삼상 10:19). 이렇게 ‘구주’(σωτὴρ)와 ‘구원자’(מוֹשִׁיעַ)는 같은 말이다. 메시아가 필요에 따라 구주/구원자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그 본래 의미는 정치, 군사 지도자와는 별개이다.

 

예수는 스스로 메시아(그리스도)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만일 유대 왕권 회복에 기초한 ‘왕된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묻는 질문이라면, 대답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예수는 그런 그리스도 이해를 따르지 않았다(12:35-37). 하지만 본래 메시아의 의미, 곧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이해에 기초한다면, 예수는 분명 스스로 메시아(그리스도) 의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이유로 물 한 잔 대접하는 일이 크게 칭찬을 받을 정도라면(9:41), 그런 그리스도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 뻔하다. 제자들이 꾸중을 들은 이유도 그리고 그들이 예수를 저버린 이유도 바로 ‘하느님의 일’만 하고 세상의 영광, 재물, 성공을 도외시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보았고 그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우리에게는 더욱 현실적이고 절실한 물음이 된다. 예수 이해가 우리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랍비요, 선생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사람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우리는 ‘예수의 믿음’ 곧 ‘하느님의 믿음’과 가치관을 우리 삶의 잣대로 삼는다. 예수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보냄을 받은 자(그리스도)로서 각자 일관된 삶을 산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는 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아)이다. 하느님의 일이 다양한 만큼 그리스도(메시아)의 유형이 많이 있겠지만, 예수가 참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라는 선언에 담겨 있다. 소위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대상/이해에 대한 반감이 은연중 실려 있는 표현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 속한 자’이다. 마치 음악가(musician)가 음악(music)에 종사하는 사람이듯, 그리스도인(Christian)은 그리스도(Christ)와 관련된 사람이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일’을 위임 받은 ‘그리스도’로서 소명을 다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정체성이자 행동강령이다.

 

오늘날 굳이 신문 방송을 통하지 않고도 개신교인의 숫자가 급속도로 감소하는 것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생각이 비그리스도인에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되지 않음이 문제라면, 이를 말이 되도록 만들면 그뿐이다. 일단 성서를 읽고 그것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꿀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전도(傳道)를 지상과제로 삼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그리스도인들의 언어를 꼼꼼히 정리하고자 힘썼다. 성서 언어라고 할지라도 후대에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재해석되듯이, 그리스도인의 일상 언어 역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써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불교 언어를 써서 전할 수 있어야, 자신의 종교에 능통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불자들 역시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설명할 수 있어야, 불교에 능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통될 수 없는 말과 사고는 이미 죽은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늦게나마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의 출발은 예수를 배우고 따르는데 필요한 성경공부 교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마가복음이 기초가 되었다. 따라서 마가 공동체의 역사적 상황, 집필 장소와 동기, 바울 서신과의 관계 등 마가복음 연구에 흔히 등장할 법한 주제들에 관한 자세한 논의가 배제되었다. 마가복음 연구에 모두 필요한 과제이지만 이 책의 범위(scope)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이런 정보는 수 많은 주석책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마가복음 공동체가 예수의 시대(30년대)를 통해 자신들의 시대(70년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마가복음을 통해 현 시대의 문제를 직시하고 신학 다시 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마가복음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마가복음의 예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open-ended) 이야기이다.

 

우리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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