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과 신학 다시 하기

<마가복음 정치적으로 읽기> 아니 이럴 수가?

본문

우리의 지난 10년 간 성경공부의 결실이 책으로 나왔다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일단 인터넷에 소개된 목차, 표지 등에서 이미 몇 개 그러나 중요한 '편집(?)'이 있는 것을 보고 조마조마 설마설마 하면서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난 저자이면서도 책을 받아 보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한다. 

1. '하느님'을 일괄적으로 '하나님'으로 바꾼 것을 보고 숨이 막혔다. 내가 굳이 '하느님'이라고 쓰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책을 썼는데, 걍 무시되다니... 이래도 되나?

2. '신학 다시 하기'(Doing Theology Anew)라는 말은 기본적인 신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만한 전문용어다. 그런데 이것을 "신학 새롭게 정립하기"라는 듣도보도못한 말을 씀으로 해서 참 황당했다. 오강남박사님이 추천사에서 인용문표기("")까지 써가며 소개한 '신학 다시 하기'도 '신학 새롭게 정립하기'라는 말로 고쳤다.

3. 본래 내 원고는 24장으로 되어있는데, 책을 보니 22장만 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까, 8장과 9장 (마가복음 3-4장)이 삭제되어 있었다. 물론 이 두 장이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편집자/출판사 입장에서 뺄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저자에게 양해를 구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너무 까칠한 걸까? 마가복음을 구구절절 주석하지는 않았지만, 전체를 큰 그림으로 해석하고 있기에, 마가복음 4장 4장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할까?


---- 이 모든 것은 그냥 눈 감고 넘어가자. 그래도 내 책을 출판해 주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있으니, 일단은 그냥 넘어가자. 이렇게 생각했는데...

조금 전에 한국에 있는 형이 내 책을 샀다고 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다. 그래서 궁금하던 차에, 제 3장 "하느님 나라"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달라고 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본래 내용을 삭제하고 아예 자기네 맘대로 썼네. 여기 본래 원고랑, 책으로 나온 부분을 비교해 보시라. 나는 "왜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하느님이라고 하나?" 저자의 의도를 밝혔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 문장을 "왜 하느님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하나?"로 바꾸었다. OMG!!


본래 원고에 있는 내용

앞 장에서 우리는 마가복음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용어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장에서는 복음서의 핵심적인 개념인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한다. ‘하느님 나라’라는 말 속에는 ‘하느님’과 ‘천국’(하늘 나라)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 말들을 새롭게 들여다 보자.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이라고 하나?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제일 먼저 제기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교와 상관 없는 다른 신을 일컫는 말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를 언어학적 타당성과 신학적 이해라는 두 측면에서 검토해 보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전통사상에서는 '하늘(天)'을 절대적이고 지고한 존재로 인식했다. ‘하늘’의 옛 형태는 ‘하ㄴ⋅ㄹ’인데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 될 때 아래아(⋅)를 폐기하기로 함에 따라 ‘하ㄴ⋅ㄹ’을 ‘하늘’로 표기하게 된다. ‘하늘’에 존칭접미사 ‘님’을 붙이면 하늘님이 되고 여기에 ‘ㄹ’탈락 현상이 일어나 ‘하느님’이란 단어가 절대적인 존재(God)을 가리키는 표준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 곧 유일신 개념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통명사 ‘하느님’을 고유명사화(이름 짓기) 한 셈인데 이것은 여러 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나의 옛 형태는 ‘하ㄴ⋅’가 아니라 ‘ㅎ⋅나’이다. 초기 성서번역을 보면 하늘을 뜻하는 ‘하ㄴ⋅님’이 쓰였을 뿐 하나를 뜻하는 ‘ㅎ⋅나님’ 이란 표기는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하나라는 숫자에 존칭접미사 ‘님’을 붙이는 것은 문법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둘님(두님), 셋님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이렇게 언어학적으로 볼 때, 하느님은 본래 하늘에서 온 말이며, 유일한 하나의 존재라는 의미와는 별개다.

 

이것은 또한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성서—특히 히브리(구약) 성서—에서 말하는 유일신 개념은 신이 하나만 있다는 말이 아니라 여러 신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정체성 선언(출 20:3; 신 6:4)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는 다수를 전제한다. 그래야 ‘한 분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말이 된다. 우리는 하나의 신만 섬기고, 둘을 함께 섬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하나님’을 굳이 써야한다면, 이 말을 헬라 철학의 모나드(Monad) 개념에 비유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와 헬라 철학에서 모나드(Monad)는 존재의 근원으로서 분리되지 않은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 특히 영지주의에서 이해한 신 개념이기도 하다. 이 경우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나드의 또 다른 이름으로 ‘신,’ 혹은 ‘절대자’와 같은 개념이라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신학자 틸리히(Tillich)가 말한 ‘존재의 궁극적 근원(The ultimate ground of being)’이나 동양사상의 ‘태극을 일으키는 원천’ 역시 동일한 의미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이라고 이름하든지—하느님이든 혹은 하나님이든—이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한 가지다. 노자의 도(道) 이해에서 볼 수 있듯이, 도란 이름 지을 수도, 또 이름에 갇힐 수도 없는 이름 이전의 존재다. 출 3:14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있는 존재’(I am who I am)로 소개한다. 따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하느님이라는 명칭을 서로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신을 이름 안에 가두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책에서 ‘하느님’(God)이라는 말을 굳이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대자인 신을 특정한 이름짓기로 가두려는 것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다. 또한 무엇보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비그리스도교적, 비종교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책에 저자 모르게 바뀐 내용



댓글목록

kyungwonnie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kyungwonnie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OMG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하나님'과 '하느님'을 걍 맞바꾸었네요. 소위 편집자라는 분들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을...


"이 책에서 굳이 '하나님'(God)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절대자인 특정한 이름에 가두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한 무엇보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비종교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게 말인가요, 소인가요...?


luther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luther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목사님, 책에 있는 하느님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는 논의는 피상적이고 일면만 본 것입니다. 새로 책을 낼 때에는 다음 제 논문을 읽고 약간 수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저 하나+님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 변천의 역사가 있는 용어입니다. 물론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책에서 논중한 이유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샬롬


"왜 하느님이 아닌 하나님인가" 용어 문제로보는 한국교회사, 하나님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뉴스앤조이> 2015년 9월 15일.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22


"Competing Chinese Names for God: The Chinese Term Question and Its Influence upon Korea," Journal of Korean Religions 3-2 (Seogang University, Seoul: Oct. 2012): 1-27.



North American Missionaries’ Understanding of the Tan’gun and Kija Myths of Korea.”Acta Koreana 5:1 (January2002): 51-73.


"改新敎 傳來期 神名稱 論爭" <기독교사상>37:10 (1993년 10월): 200-223.

박원일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원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옥성득박사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또한 관심있게 제 글을 읽고 또 코멘트해 주신 것도 고맙구요. 저도 제 책을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얼마나 편집이 되어 출판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올린 글만 읽고 의견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글에서 밝혔듯이 일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 이해를 전제하고 쓴 것입니다. 박사님이 링크해 주신 첫 번째 글(뉴스앤조이)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본래 의미는 '하늘님/하느님'을 뜻하는 것이고 그에 더하여 크고 위대하다는 의미의 '한'에 기초했다는 이해에 동의합니다.


아시겠지만 엘로힘(אֱלֹהִים)은 복수형을 띄고 있고, '신들(gods; 출 12:12)이라고도 쓰였습니다. 물론 엘로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가리키기도 했는데, 이는 엘로힘이 우가릿 신화의 '엘"처럼 신들 중의 신, 최고의 신이라는 이해에 바탕을 둡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경우는 고유명사 야훼(YHWH)를 써서 표기하고요. 신명기 6:4에서 아도나이 엘로헤이누(YHWH is our God)라는 표현이 이를 뒷바침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글에서 인용하는 '하나님'은 일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런 하나님 이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   하나님 유일신 개념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보통명사 ‘하느님 고유명사화(이름 짓기 셈인데 이것은 여러 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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