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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바울>>--"십자가에 대한 두 가지 오해와 바울의 십자가 이해 "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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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다음 글들은 여러 날에 걸쳐 올린 듯 하기 때문에, 내용이나 순서에 다소 혼동이 올 수도 있다. 당당뉴스에 올려진 글을 퍼 올린다--보그 &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60
"십자가에 대한 두 가지 오해와 바울의 십자가 이해 " - 마커스 보그 & 존 도미닉 크로산, 2장에서(근간)

"십자가에 대한 두 가지 오해와 바울의 십자가 이해"
마커스 보그 & 존 도미닉 크로산, 2장에서(근간)

제국의 성격을 드러낸 십자가
바울과 그의 청중들의 1세기 상황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반(反)제국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바울이 요약한 말은 "예수가 죽었다"도 아니며, "예수가 살해당했다"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였다. 즉 예수는 단지 죽은 것이 아니며, 단순히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로마제국의 당국자들에 의해 처형된 것을 뜻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의 처형 형태였다. 바울의 세계에서 십자가는 언제나 로마제국의 십자가였다.
로마제국은 십자가 처형을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시켰는데, 제국의 통치에 대해 (폭력적으로든 비폭력적으로든) 도전한 사람들과 끈질기게 반항하는 노예들(단순히 가끔씩 불순종하거나 다루기 힘든 노예들이 아니라)이 십자가 처형의 대상이었다. 즉 살인자나 강도는 다른 형태로 처형될 수는 있지만, 십자가에 처형되지는 않았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그 두 부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모두 로마제국의 지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십자가 처형은 그 처형 방식이 공개적이며 시간이 오래 걸리며 매우 고통스러운 형태로서, 그 메시지는 "이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감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국가가 자행하는 고문이며 테러리즘이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즉시 예수가 반제국적인 인물이었으며, 바울의 복음이 반제국적인 복음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제국이 예수를 살해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이 예수에 대해 "틀렸다"(no)를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에 대해 "옳았다"(yes)고 하신 것이며, 예수의 정당성(결백)에 대해 확증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살해한 권력에 대해 "틀렸다"고 선고한 것이다.
예수가 로마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그의 정당성을 확증하셨다는 두 가지 패턴이 사도행전 앞부분에 두 번 나온다(행 2:23-24). 그 몇 절 뒤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다시 반복된다. 즉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된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2:36). 물론 이런 말들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사도행전에 나온 말들이지만, 우리가 이런 말을 인용하는 이유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선언의 명백하며 즉각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로마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그 세계의 통치자들의 성격을 폭로한다. 즉 그들은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고전 2:8), 예수를 살해한 지배와 폭력 체제의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 즉 그의 정당성을 확증하셨다는 것은 예수가 주님이지, 예수를 처형한 권력이 결코 주님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로마의 제국신학과 대결하며 그것을 맞받아 치는 것으로서, 예수가 주님이지, 카이사르가 주님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의 일차적인 의미이다. 고린도전서의 탁월한 서론(1:17-2:16)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연달아 대조시키고 있다. 바울이 "지혜로운," "지혜"라는 말과 그 반대말인 "어리석은," "어리석음"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 이 서론에서 북을 두드리듯 울린다. 또한 "약한," "약함"과 "강한," "능력"도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울은 이런 대조적 표현들을 거의 숨돌릴 겨를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의 수사학, 그의 사고방식과 그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1:18- 2:8의 대부분을 인용하면서, 바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구절들 사이를 떼어놓을 것이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이방]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바울이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이방]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병행을 이루며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세상의 지혜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함이 세상의 지혜와 능력보다 지혜롭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바울이 또 다시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라고 밝히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다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사람의 지혜, 곧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사이를 또 한 번 대조시키는 것으로 매듭지어진다.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찬란한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대조는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 사이의 대조로서,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세상의 지혜 사이의 대조로 표현되기도 했다. 즉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게는 어리석음이며,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반대된다.
바울이 말한 이 세상의 지혜란 무엇인가? 바울이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는다"(1:22)는 말에서 "이방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그리스 철학의 지혜를 염두에 두고 이 세상의 지혜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를 너무 좁게 이해한 것이며, 또한 잘못된 해석이다. 그리스 철학이 예수를 살해한 것이 아니었다. 로마제국의 당국이 예수를 살해했다.
바울 자신이 그렇게 말한다. 이 세상의 지혜는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다.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세상의 지혜는 당시의 지혜이며, 당시 통치자들의 지혜다.
바울의 역사적인 맥락에서는 그것이 물론 로마를 뜻했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제국 이상을 뜻했다. 문제는 단순히 로마제국의 당국이 아니었다. 마치 로마제국이 다른 대부분의 제국들보다 더욱 악했으며, 유대인들의 제국이나 기독교인들의 제국이 로마제국보다 더 나을 것처럼, 로마제국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단순하게 로마제국만을 고발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 안에서 그가 본 것, 즉 로마제국이 이 세상의 지혜를 구현했다는 사실, 곧 이 세상이 정상적인 것으로 당연시하는 것(the normalcy of this world), 가장 일반적인 생활방식,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고발한 것이다.
이 세상이 정상적인 것으로 당연시하는 것은, 기원전 3천 년대에 인류가 대규모 농업을 발전시키고 그로 인해 인구집중이 가능하게 된 이래로 가장 일반적인 사회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당시에 등장하게 된 것은 우리가 간단히 "지배체제"(domination systems)라 부르는 것으로서, 소수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재물, "지혜"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사회체제를 말한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했다. 그 소수는 폭력과 폭력의 협박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를 확립했다. 우리가 4장에서 로마의 제국신학이라 불렀던 것처럼, 평화와 안정은 승리와 정복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지배체제는 제국과 같은 보다 큰 형태와 작은 왕국처럼 보다 작은 형태로 존재했다(또한 현재도 존재한다). 그 지배체제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폭력과 폭력의 위협을 포함해서 권력을 통해 지배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런 방식 이외에, 왕국들과 제국들이 달리 어떻게 만들어지며 유지되는가? 이것이 바로 세상의 지혜이며, 이 지혜에는 그 체제를 합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도 포함된다.
이런 세상의 지혜에 대한 바울의 고발은 직선적이다. 즉 이 세상 통치자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고발이다. 세상의 지혜, 즉 폭력을 통해 지배하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당연시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정반대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은 것임을 드러낸다. "어리석은/어리석음"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저능아"를 뜻하는 영어 단어(moron)의 어원이다. 하나님의 지혜/어리석음과 비교할 때, 세상의 지혜는 "멍청한" 것이다. 단순히 멍청한 것이 아니라, 잔인하며 살인적인 것이다.
이것이 또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의 의미이기도 하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말에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갈 6:14)라고 말한다. 즉 이 세상, 곧 제국이 정상적인 것으로 당연시하는 이 세상이 바울에게는 십자가에 달렸으며, 끝장이 났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달렸다. 그는 이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말이다.
다음 본문은 비록 논쟁이 되는 편지들 가운데 하나에서 온 것이며, 따라서 아마도 바울이 쓰지 않은 것일 테지만, 바울의 이런 이해와 일치한다. 아마도 80년대에, 즉 바울이 처형된 후 20 몇 년이나 그 이상이 지나서, 골로새서의 저자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골 2:15)라고 말한다.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가 그 통치자들을 "뭇사람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는가? 예수의 십자가는 제국의 성격을 폭로하여, 지배체제와 그것을 합법화시키는 이 세상 지혜의 도덕적 파탄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이야기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선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이 세상 파라오의 지배 아래 살기보다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도록 요청한 선언이다. 또한 출애굽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선언의 의미도 개인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이다. 바울이 그의 청중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살기보다는 예수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도록 요청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개인적인 변화의 길이다. 또한 이 선언은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지배체제가 정상적인 것으로 당연시하는 것을 뒤집어엎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었다. 그것은 그 통치자들을 고발했다. 즉 그 통치자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고발이다. 더 나아가, 이 선언은 바울과 그의 공동체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매우 다른 비전에 헌신하도록 요구했다.

 

십자가에 대한 두 가지 오해와 바울의 십자가 이해
두 가지 오해

우리는 십자가에 대한 바울의 선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오해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다는 말은 때때로 오직 예수의 죽음만이 중요한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두 번째 오해는 더욱 널리 퍼져 있다. 즉 거의 천 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죄를 위해 대신 희생된 것으로 가장 일반적으로 이해해왔다.

1. 오직 십자가(Only the cross). 십자가에 대해 바울이 강조한 말들을 그 문맥과 그 의미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강조하게 되면, 예수의 일생 가운데서 마치 바울에게 중요했던 것은 예수의 죽음뿐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때때로 바울을 이런 방식으로 읽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바울의 입장에 동의했고 또 어떤 학자들은 바울을 비판해왔다. 더군다나, 많은 기독교인들 역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데, 예배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흔히 예수의 죽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메시지가 일차적으로 또 배타적으로 예수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지, 예수의 삶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많이 다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상상할 수 없다. 예컨대, 바울 자신과 바울이 개종시키려던 사람과 나눈 대화를 상상해보자. 바울과 루디아의 대화(행 16:13-15)를 상상해보자.
바울과 루디아는 북부 그리스의 도시 빌립보의 성벽 바깥에 있는 유대인 기도처에서 만났다. 소아시아의 도시 두아디라 출신의 루디아는 자색 옷감(로마 세계의 사치품목) 장수였으며, 꽤 부유했다. 루디아는 총명하고 능력이 있으며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여인이었으며, 유대교에 매력을 느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바울에게 이들이 중요했던 것은 3장에서 강조했다). 루디아는 개종하기 이전의 "탐색자"였다.
이제 바울이 루디아에게 예수에 관해 말해주는 것을 상상해보자. 또한 바울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에 초점을 맞추어 말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그 대화는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루디아가 "당신이 말하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활했다는데, 그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고 물을 것이다. 바울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신경쓰지 말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런 대답은 루디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결국 대화를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대답이 되고 말 것이다.
바울이 루디아에게 예수의 죽음에 관해 말하면서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세상을 통치하는 권력자들이 그를 처형하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키셨는가? 지금 주님이신 예수는 누구였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가르쳤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었다(지금도 여전히 빼놓을 수 없다).

2. 대속제물로서의 십자가(The cross as substitutionary sacrifice). 바울이 십자가를 강조한 것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죄에 대한 대속제물로 이해하여 왔다.
예수의 죽음을 이렇게 보는 방식은 매우 낯익은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비기독교인들은 십자가가 뜻하는 것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었다.
예수는 죄에 대한 희생제물이다.
예수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
예수는 죄에 대한 변상(payment)이다.

이런 십자가 이해에서는 처벌, 대리(代理, substitution), 변상과 같은 개념이 핵심적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 값을 치렀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죄와 잘못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 시대에도,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런 십자가 이해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강력하게 옹호한다. 다른 기독교인들은 이런 십자가 이해에 대해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특히 하나님이 피의 제물을 요구했으며 예수가 그 제물이었다는 개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런 십자가 이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십자가 이해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정통 기독교의 의미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십자가 이해는 천 년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1097년에 캔터베리의 안셀무스(Anselmus of Canterbury)가 쓴 신학 책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라는 책제목 자체가 그 책의 목적을 말해준다. 즉 왜 하나님은 예수 안에 성육할 필요가 있었는가? 안셀무스는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그 질문에 대답한다.

1.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
2. 용서는 변상을 요구한다. 변상없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는 것은 죄가 하나님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불순종한 값은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
3. 그러나 무한한 존재이신 하나님께 대해 우리가 진 빚은 무한하다. 그러므로 유한한 존재는 그 빚을 갚을 수 없다. 오직 무한한 존재만이 무한한 빚을 갚을 수 있다.
4. 그래서 예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그는 무한한 존재이며, 그의 죽음은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값을 치르기 위한 대속제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다.

안셀무스 이후 시대에는 십자가에 대한 이런 이해가 "보통 기독교"의 한 부분이 되었다. "보통 기독교"란 말은 경멸하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대부분의 보통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난 천 년 동안과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심지어 안셀무스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제물로 생각해왔다.
멜 깁슨 감독의 2004년작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은 이런 십자가 이해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예수의 생애에서 마지막 12시간, 즉 그의 체포, 고문, 유죄선고, 죽음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서, 예수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이라는 생각만이 아니라, 예수가 이 모든 수난을 겪은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강조한 영화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 그리고 예수가 그처럼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은 우리의 죄가 그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작고한 교황을 비롯해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십자가에 대한 이런 이해가 기독교인들 사이에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십자가 이해가 복음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어떤 기독교인이 "당신은 십자가를 믿습니까?"라고 묻거나,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걸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그 물음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십자가 이해다. 즉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으로써 대속제물이 되었다는 것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바라보는 렌즈가 되었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말을 들을 때 걸러서 듣는 여과장치가 되었다.
문제는 안셀무스의 논증이 아니다. 그 논리는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안셀무스의 만족설이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던 중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Antony W. Bartlett이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논리는 성지 예루살렘을 무슬림들에게 빼앗긴 기독교인 군주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군인들은 마땅히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논리였다는 점이다. Cross Purposes: The Violent Grammar of Christian Atonement (Harrisburg, P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1), 103-4; Kwok Pui-lan, Postcolonial Imagination & Feminist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5), 13에서 재인용. - 옮긴이.)

문제는 이런 십자가 이해가, 바울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복음의 핵심으로 만들 때 뜻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속제물은 바울에게 낯선 것이었다.
실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죄를 위한 대속제물로 보는 것은 틀린 역사이며, 해로운 인간론이며, 불량한 신학이다. 그것이 틀린 역사인 이유는 그것이 바울 당시에는 없었던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해를 거꾸로 바울에게 투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의 뒷부분에서 왜 그것이 해로운 인간론이며 불량한 신학인지를 설명하겠다.


십자가에 대한 바울의 이해

이제부터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 안에서 보았던 의미를 찾아볼 것인데, 먼저 두 가지 요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이 장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함께 간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의미를 준다. 즉 예수의 십자가는 바울에게,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켰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 확신이 없었다면, 예수의 십자가는 바울에게 단지 로마제국이 처형한 또 하나의 죽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처럼 부활은 십자가에 의미를 주었다. 바울의 다마스쿠스 체험은 바울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는 바울의 방식도 불가피하게 변화시켰다. 그의 죽음은 더 이상 단순히 하나의 처형이 아니라 계시였다.
부활이 십자가에 의미를 준 것처럼, 십자가 역시 부활에 의미를 주었다. 예수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었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예를 들어, 예수가 자신의 몸을 돌보려 하지 않은 채 용감하게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죽었으며,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했다고 상상해보자. 그의 부활이 똑같은 의미를 지닐 것인가? 부활한 분이 십자가에 달린 분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가?
바울에게는 이 문제가 분명히 중요하다. 십자가가 부활절에 의미를 주는 것은 부활절이 십자가에 의미를 주는 것과 같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의 의미도 없다.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 계시였다. 실제로 복수로 "계시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한 가지 이상을 계시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점은 "속죄"(atonement)라는 말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속죄의 교리"는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속죄는 대속(代贖, substitutionary atonement)이라는 특별한 이해로 간주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속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하면, 그들이 묻는 것은 십중팔구 대속을 믿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속죄라는 말에는 훨씬 폭넓은 신학적 의미가 들어 있다. 바울이 십자가에서 보았던 속죄의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속죄의 폭넓은 의미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다른 많은 일반적인 기독교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속죄라는 용어도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속죄는 화해의 수단(a means of reconciliation)을 가리킨다. 속죄는 분열이나 불화, 소외된 상황을 전제한다. 그런 불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이것이 속죄의 문제다.
속죄가 지닌 폭넓은 의미를 보여주는 것은 그 말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즉 속죄(atonement)는 다시 "하나됨"(at-one-ment)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됨은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의 십자가는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하나됨을 가져오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약성경 전체에서만이 아니라 바울에게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최근에 어느 학자는 바울이 십자가의 속죄하는 의미에 관해, 열 가지 이상으로 말했다고 썼다. 그것은 좀 과장일 것이지만,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우리는 바울의 십자가 이해를 세 범주로 나눌 것이다. 즉 십자가는 제국의 성격을 드러내며, 개인적인 변화의 길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성격을 계시한다.

마커스 보그 & 존 도미닉 크로산, (근간)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기독교의 평등성과 로마인들의 계급구조 사이의 반대, 바울의 기독교 신학과 로마의 제국신학 사이의 반대, 그리스도와 카이사르 사이의 반대를 어떻게 하려고 의도했기에, 정확히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충고나 명령을 하는 것인가? 그 전체 문단을 살펴보자.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라도 복종해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또한 조세를 바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을 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롬 13:1-7)

학자들은 위의 질문에 대해 몇 가지로 설명을 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살펴볼 것인데, 비록 우리가 그 설명의 타당성을 인정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의도에 대한 제3의 해석을 주장할 것이다.
첫째로, 바울의 이 본문을 일반적이며 제한이 없는 원리로 간주하는 한, 그것은 바울의 모든 편지들 가운데 가장 분별없는 본문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 본문이 어떻게 이용되었는가를 되돌아보면, 바울은 분명히 이런 본문을 결코 쓰지 말아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둘째로, 이 본문은 50년대 중반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십대의 네로가 황제로 등극한 혼란한 상황에 처한 로마인들에게 쓴 것이다. 그 일반적인 시작 부분은 조세와 관세에 관한 구체적인 끝마디 선언의 기초를 잡으려는 의도였다. 다시 말해서, 이 본문은 잘못된 이유 혹은 부적절한 이유 때문에 순교 당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였다는 말이다. 현대 시대에 이와 비슷한 사례는 본회퍼가 에버하트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에서, 1940년 6월 17일, 프랑스가 항복했다는 뉴스를 듣고 까페에 있던 모두가 일어나서 나찌에게 경례를 했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당신의 팔을 들어 올리시오!"라고 말했다. "당신은 제 정신인가요? 우리는 지금 매우 다른 것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지 그딴 경례 따위에 목숨을 걸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처럼 경례나 조세 혹은 관세 따위를 위해서 순교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순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이 본문을 쓴 목적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의 최초 필사본들은, 신약성서 본문의 다른 모든 필사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같은 장(章)과 절(節)로 나뉘어지지 않은 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로마서 13장 1-7절에 초점을 맞추어, 마치 이 대목이 바울 사상의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단락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그 앞뒤 문맥을 무시하기가 매우 쉽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바울의 이 단락이 12장14절에서 시작되어 13:1-7을 거쳐 13장10절에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면, 즉 이 유명한(악명 높은) 본문을 12:14-13:10의 문맥 속에서 읽고 해석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자.
특히 12:14-13:10의 전체 단락이, 예수가 산상설교에서 말한 것, 즉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들에 대한 폭력 사용을 부정하는 급진적인 언어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실제로 이 전체 단락은 마태 5:39-48과 누가 6:27-36에 나타난 예수의 메시지와 똑같은 바울의 표현이다.
첫 번째 병행. 예수는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누가 6:27-28)고 말한다. 바울은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롬 12:14)라 말한다.
두 번째 병행. 예수는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마태 5:39) 하고 말한다.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롬 12:17), 그리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롬 12:21)라고 말한다.
세 번째 병행. 방금 본 것처럼, 예수는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마태 5:39) 하고 말한다. "맞서지 말아라"는 말의 그리스어 동사는 anti + histemi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스어 사전(Liddell & Scott)은 이 동사가 "특히 전투에서, 맞서다, 저항한다, 대적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마태 5:39에서, 그 말은 "폭력적으로 대항한다"는 뜻이다.
로마서 13:1-7에서 바울이 말하는 대항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폭력적인 대항을 문제삼고 있으며, 마태 5:39보다 그것을 더욱 강조한다. 바울이 다음 두 절에서 그리스어 동사 두 개를 어떤 순서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권세를 거역하는 (anti + tasso)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anti + histemi) 것이요,
거역하는 (anti + histemi)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해야 (hupo + tasso) 합니다.(13:2, 5)

anti + histemi가 (군사적인) 폭력을 생각나게 한다면, anti + tasso는 더욱 그렇다. 그리스어 사전은 anti + tasso를 "대결하다, 전투에서 서로 겨누다"는 뜻과 "맞서다, 얼굴을 맞대다, 전투에서 맞부딪치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이 동사는 anti, 즉 "맞선다"는 말과 taxis, 즉 "정렬, 군대의 전투대형이나 배치, 포진... 군인들의 한 횡렬이나 종렬... 군인들의 한 본대, 중대"라는 말에서 온 동사로서, "전술"을 뜻하는 영어 tactics는 이 그리스어 어원에서 온 말이다.
마지막 병행. 예수는 마태복음(5:44)과 누가복음(6:27-28) 모두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3:8-10)

바울은 이 세 절 속에서 "사랑"을 다섯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13:1-7에서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 본문을 12:14-13:10의 전체 맥락 속에 놓고 읽었을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본문은 물론 로마가 요구한 조세와 관세에 관한 것이며, 정확히 그런 세금을 폭력적으로 거부하는 것에 관한 것이며, 기독교인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폭력적인 세금 반란의 유령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바울을 너무나 질겁하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매우 지각이 없으며 제한이 없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바울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해하게 되는 것이며, 로마가 기독교인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로마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 사이의 궁극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마커스 보그, 존 도미닉 크로산, (근간)

 

정복자가 신이 된 역사 - 로마의 제국신학
사령관 막사로부터 신전의 벽에로

기원전 1세기 중엽에, 거의 한 세기 동안 계속된 격렬한 사회적 소요사태와 원한에 사무친 계급간의 투쟁이 로마의 최악의 악몽으로 변하여, 양편 모두 군단 병력이 충돌하는 끔찍한 내전으로 치달았다. 모든 게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로마는 파멸되었고, 로마제국은 끝장났으며, 그 해체과정의 참혹함 가운데 지중해 세계를 파괴할 것처럼 보였다.
호레이스는 그의 {서정시}(Epodes)에서, "어떤 미친 광란이 우리를 몰아가는가, 아니면 어떤 강력한 힘, 혹은 잘못이 우리를 몰아가는가?"(7.13-14)라고 물었다. 로마가 시작될 때 로물루스(Romulus)가 쌍둥이 동생 레무스(Remus)를 살해한 것이 결국에는 "가혹한 운명이 로마인들을 쫓고 있으며, 형제를 살해한 죄가 후손들에게 저주"를 뜻하는 것인가?(7.17-20). 이제 "두 번째 세대는 내전으로 가루가 되고 있으며, 로마는 그 자신의 세력으로 인해 비틀거리고 있다"(16:1-2)고 그는 말했다. 아마도 로마는 "우리들 스스로 파괴해버릴 것이며, 우리 사악한 세대는 저주받은 세대"로서, 마침내 사나운 짐승들과 더욱 사나운 야만인들이 "우리 도시의 잿더미"를 배회하게 될 것이다(16.9-12).
그러나 기원전 31년 9월 2일, 그리스 북서 해안의 악티움 앞 바다에서 옥타비아누스, 즉 조만간 아우구스투스가 될 옥타비아누스는 고대세계의 마지막 대 해전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함대를 격파했다. 그는 그 두 사람을 추격하여 결국 그 둘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모두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게 만들었지만, 그는 악티움의 북쪽 갑(岬)에 있던 자신의 사령관 막사(tent)를 성지(聖地)로 만들라고 지시한 후 그들을 추격했던 것이다. 그 자신의 사령관 막사 터 자체를 성소로 만들기 위해, 적군에게서 포획한 함선들에서 떼어낸 청동 충각(衝角, attack ram)의 1/10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이렇게 그 성소의 정면을 장식한 후에, 옥타비아누스는 그 성소 위에 매우 커다란 라틴어 대문자로 선언문을 새기도록 만들었다. 그 선언문은 단순히 그 성소를 봉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선언문은 그 자신이 성소를 봉헌했다고 썼다. 그 선언문의 상당부분은 아직도 그곳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록 2차 세계대전 이전에 기록했던 그 선언문의 부분들은 사라져버렸지만, 다른 부분들은 그 이후에 복구되었다. 여하튼, 우리는 그 선언문을 충분히 재구성할 수 있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는, 하나님의 아들[DIVI F]로서, 이 지역의 공화정을 위해서 그가 싸웠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가 다섯 번째로 집정관(consul)이 되고 일곱 번째로 정복자(imperator)가 되어 육지와 해상에서 평화를 확보한 이후, 적군에 대한 공격을 명령했던 막사를 마르스(Mars, 軍神)와 넵튠(Neptune, 海神)에게 봉헌하면서 해전의 전리품들로 장식했노라.

이 성소 낙성식 선언문은, 로마의 제국신학의 기본 구조가 황제 자신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에게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명하게 요약해주고 있다.

종교 → 전쟁 → 승리 → 평화

당신은 먼저 신들을 예배하고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신들이 당신 편에 있는 상태에서 전쟁에 나갈 수 있다. 그럼으로써 물론 당신은 승리할 수 있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당신은 평화를 얻는다. 이것이 로마제국의 평화 계획의 구조적인 순서이며, 당신은 이것을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서 문서들과 비문들, 동전들과 형상들, 동상들과 신전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핵심에서 로마의 제국신학은 "승리를 통한 평화"(peace through victory)를 선포하며, 혹은 이 비문에서처럼 "승리"와 "육지와 해상에서 평화를 확보"한다고 선포하는데, 그 마지막 라틴어 구절(pace parta terra marique)은 거의 북을 치는 리듬과 같다. "승리를 통한 평화"라고 로마는 말했다. 실제로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나, 제국의 이런 평화 계획 이외에 또 다른 어떤 대안적인 평화 계획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 적이 있는가?



바울의 도시 선교 전략
바울은 도시 사람이었으며, 그가 사도로서 활동한 것 역시 전부 도시에서 벌인 활동이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예수와 매우 달랐다. 예수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났으며, 공적인 활동 전부가 농촌에서 시골 마을들과 작은 성읍들을 무대로 했다. 비록 바울이 도시에서 도시로 여행하는 동안 농촌 지역을 거쳐갔지만, 사도행전이나 그의 편지들 속에 그가 통과했던 마을들과 성읍들에서 사람들을 개종시키려 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도시들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주로 로마 지방들의 수도(capitals)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출생 장소였던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를 비롯해서, 시리아 안디옥의 경험을 거쳐,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아카이아의 고린도, 소아시아의 에베소 등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그런 도시들에서의 생활, 특히 그런 수도와 같은 대도시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바울의 도시들. 지중해 세계의 과거를 찾아다니는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기념물"과 같은 유적들을 보게 된다. 즉 2천 년 동안 살아남은 건축물들로서 도로, 하수구, 아치(arches), 신전, 광장, 주랑, 수도교, 분수, 목욕탕, 극장, 원형극장, 경기장 등이 그것이다. 어떤 도시들에서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대저택들도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런 건축물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보며, 그것도 매우 인상적인 영광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의 집들과 동네는 오랜 세월을 견디기에는 너무 엉성해서 모두 사라졌다. 몇 가지 단서들만 있어도 평민들의 생활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평민들이 그런 대도시들에 살았다는 사실 자체를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도시의 평민들이었다.
고대 세계의 "평민들"은 도시 인구의 대다수였다. 그들은 도시의 노동자 계급이었다. 다음 목록은 그 전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직업에 대한 상상을 촉발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마부, 가축 상인, 청소부, 공공건물의 관리인, 목욕탕 시중드는 사람, 건축 노동자, 벽돌 제조공, 석공, 목수, 가죽 무두질하는 사람, 가축 도살자, 빵굽는 사람, 방적공, 직조공, 그리고 옷감, 가죽, 도기, 금, 은, 나무, 돌을 다루는 기술자들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양한 물건들을 도매하고 소매하는 상인들, 그리고 때로는 일감을 찾지 못하던 일용직 노동자 등이다.
도시 노동자 계급에는 일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혹은 여러 가지 이유들, 즉 나이, 질병, 기술 부족, 고용 부족, 신체장애 등으로 인해 가끔씩만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극빈층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부득이 거지가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힘겨운 가족들의 빈약한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연명했다.
또한 도시 노동자 계급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읽고 쓸 줄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유대교 경전을 포함해서 고대 문헌들에 친숙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 집단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했는데, 지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렸는데, 아마도 상점 운영을 잘 했거나 기술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자 후견인들에 의해 장기간 고용되었는데, 그 후견인들이 불행을 당하거나, 그들의 눈밖에 나기 전까지는 안정된 미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내에서의 경제적인 차이는 다른 부자 및 권력자 계급과의 차이에 비해 사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도시 노동자 계급의 생활을 상상해보기로 하겠다. 우선, 고대 세계의 도시들은 현대 도시들과는 매우 달랐다. 오늘날 우리가 도시를 생각할 때는 흔히 "중심가"에 상업 지역이 있고, 그 주변에 거주지역이 펼쳐져 교외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도시는 크게 펼쳐진 모습이다.
그러나 고대 도시들은 그렇지 않았다. 도시들은 규모가 작았는데, 그 분명한 이유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성벽을 쌓는 것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도시 인구가 늘어나도 성벽 안에 밀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았으며, 특히 노동자 계급이 살던 지역이 그랬다.
우리는 고대 로마 지방 시리아의 수도였던 안디옥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것은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의 {기독교의 등장}(The Rise of Christianity, 1997) 덕택이다. 1세기에 안디옥의 인구는 대략 15만 명이었으며, 그 성벽 안의 지역은 5km2로서, 인구밀도는 1km2당 3만 명에 이르렀다(pp. 147-62). 이것은 오늘날 시카고의 6배, 뉴욕의 15배, 서울의 2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도시들은 고층빌딩 속에 "수직적으로"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로마제국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안디옥에서도 성벽 안의 거의 40%에 이르는 상당한 지역이 공공건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부자들의 대저택들이 나머지 몇 퍼센트를 점유했다. 따라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 노동자 계급은 그 지역의 60%가 채 못되는 지역에서 살았다. 따라서 그들의 인구밀도는 1km2당 5만 명에 이르러, 뉴욕 맨해튼의 두 배가 되었지만, 맨해튼과 같은 고층건물들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노동자 계급이 살았던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는 문헌 자료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대부분이 여러 층으로 된 건물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건물들은 기껏해야 5층이나 6층이었던 것은 고대의 주택 건설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주택의 주인이라기보다는 임차인이었다. 고대에 "공동 소유권" 제도가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많은 가족들이 마련할 수 있었던 단칸방에서 살았으며, 그 방을 주로 침실과 창고로 사용했다. 그들은 낮에는 밖에서 일하느라 보냈는데, 날씨가 나쁘거나 병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할 때만 예외였다.
이처럼 인구가 밀집된 거주 지역에 하수도 시설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다. 그 도시들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 흔히 놀라게 되는 것은 부자들의 대저택에 있는 정교한 수도시설이었다. 즉 수돗물, 실내 화장실, 목욕을 위한 온수 시설 등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공동주택에는 이런 시설들이 없었다. 수돗물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사용할 물을 길어와야 했으며 흔히 몇 층을 오르내려야 했다. 화장실 시설은 땅에 판 웅덩이였거나 요강이었고, 요강은 대개 좁은 길에 있는 도랑에다 비웠다.
하수도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악취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벌레들과 질병이 많았다. 고대 세계에서는 어디에서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으며, 특히 도시에서는 더욱 높았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시골에서 인구가 계속적으로 유입되지 않았다면, 도시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유입되는 인구는 항상 넘쳐났다. 그 주된 이유는 로마제국의 경제정책이었다. 즉 농업이 체계적으로 상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소유한 작은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이어갔지만, 점차 작은 토지들이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이들 대지주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상업용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토지를 잃은 수만 명의 농민들은 일할 곳도 없거나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자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도시 노동자 계급의 대다수는 이처럼 새로 유입된 사람들로서 서로 간에 낯선 사람들이었다. 즉 도시로 이주했다는 것은 마을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오랜 세월 살면서 서로 간에 도우며 살았던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상실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도시 안에서의 높은 사망률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조만간 가족들을 잃고 혼자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시로 이주했다는 것은 또한 서로 다른 언어와 인종 집단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안디옥은 1km2당 3만 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그 안에는 열여덟 개의 인종 구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해, 경쟁, 적개심이 만연했으며 종종 폭동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바울이 여행했던 도시들은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의 유적들이 상징하는 영광에도 불구하고, "비참함, 위험, 공포, 절망, 증오심"으로 가득한 도시들이었다(p. 160)고 로드니 스타크는 결론지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도시선교를 했던 당시의 상황이었다. 바울이 도시선교를 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자신이 천막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막을 오늘날 캠핑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텐트나 전근대적인 의미에서 유목민들이 살던 천막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목민들은 천막을 사러 도시에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은 천이나 가죽을 사용해서 차일(遮日, blind)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차일로서의 천막은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 수요가 무척 많았으며, 기술만 있으면 가능했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일하기가 쉬웠다. 그의 도구들은 가벼웠고 들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느 도시에서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가 예를 들어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상점(shop)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업이 서로 같으므로, 바울은 그들 집에 묵으면서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행 18:3).

바울의 청중들. 바울은 로마 지방의 그런 수도들에서 무엇을 했는가? 그의 중요한 청중들은 누구였는가? 우리는 또 다시 사도행전에 나오는 누가의 이야기를 그 정보와 해석을 구분하기 위해 매우 주의 깊게 읽어야만 한다. 누가는 바나바의 선교전략을 바울에게도 포개어 놓았지만, 바울은 바나바 밑에서 선교전략을 배운 후에, 자기 혼자 선교여행을 하면서는 그 전략을 매우 과감하게 바꾸었다.
바울의 선교전략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는 바울이 비시디아의 안디옥(13:14), 이고니온(14:1), 데살로니가(17:1), 베뢰아(17:10), 아테네(17: 17), 고린도(18:4), 에베소(18:19; 19:8) 등의 도시들에서 마다 즉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동료 유대인들을 기독교적 유대교로 개종시키려 했던 것으로 설명한다. 바울의 선교전략에 대한 누가의 이해는 분명하며 한결같다. 즉 바울이 각각의 도시에서 항상 회당에서 그의 동료 유대인들과 더불어 전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실제로 그랬는가?
바울 자신의 선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자신이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첫째로, 그는 우선 다마스쿠스에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갈 1:16)라고 말한다. 둘째로, 그 이후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소명을 그런 방식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로마서에서는 "모든 민족"에게로(1:5), "다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1:13), "이방 사람들을 복족하게 하시려고 나를 시켜서 이루어 놓으신 것"(15:18)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로마서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 특수한 칭호를 붙여,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도"(11:13),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15:16)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만일 바울이 누가의 사도행전에서처럼,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 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선교적 명령을 불순종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도 모순되는 행동을 한 셈이다.
더 나아가, 바울은 50년경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 자신과 다른 모든 사도들 사이에 합의했던 결정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던 것이 된다. 우리가 위에서 말한 것을 통해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 회의의 문제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 남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사도들이 합의했던 것은 그들에게 할례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의 사도들의 회의는 두 개의 분리된 선교를 창안했는데, 하나는 유대인에 대한 선교이며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였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 이방인들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1.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
2.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
3. 그래서... 여고보[예수의 형제]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야고보의 형제이며 세배대의 아들]은...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2:7-9)

우리의 결론은, 바울이 각각의 도시에서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을 기독교적 유대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선교를 시작했을 수는 결코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을 위해서 회당에 갔었을 수는 있는데, 다마스쿠스에서의 하나님의 위임과 예루살렘 회의에서의 인간적인 위임을 지키는 선에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찾아갔던 이방인들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우리는 대개 고대 세계의 유대인의 관점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분되는 두 집단, 혹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것처럼,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3:28)을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 번째 집단이 있었다. 즉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지만--만일 그들이 남자들이라면 예를 들어 할례 받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gentile synagogue adherents)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된 집단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유대교 유일신론을 받아들여, 유대인의 도덕, 가족 윤리, 공동체의 가치를 존경하고, 특히 정기적으로 회당에 출석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 집단에 관해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와 철학자 필로(Philo)와 같은 저술가들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유대인 비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놀라운 사례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두드러진 사례는 오늘날 터키의 에베소 동쪽에 있는 도시 아프로디아스의 회당 문에 새겨진 재정적 기부자들의 명단이다. 이 명단에는 126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세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55%는 유대인들이며, 2%는 "개종자들"이며, 43%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렸던, 회당 참가자들이다(그 가운데 9명은 그 도시 의회의 회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들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에 관해 누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보겠다.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누가는 이들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을 묘사하는 데 두 개의 사로 다른 그리스어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그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 부른다(행 10:2, 22, 35; 13:16, 26). 둘째 동사는 그들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 혹은 "이방 사람 예배자들"이라 부른다(행 13:43, 50; 16:14; 17:4, 17; 18:7). 이들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누가의 자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누가는 위의 본문들에서 반복적으로 완전한 유대인과 이들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을 구분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행 13:16),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13:26),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13:43), "유대 사람들과 이방 사람 예배자들"(17:17)로 구분한다(그러나 실제로 "참가자들"은 13:43에서 누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개종자들"은 아니었다). 또한 회당 참가자들 가운데서 여자들은 특별히 강조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16:14),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17:4).
우리는 회당의 이방인 참가자들 모두가 완전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독교를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13:50). 그러나 애쨋건, 바울이 각각의 도시에서 항상 회당에 간 것은 유대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 이방인 참가자들을 기독교적 유대교로 개종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바울의 자료들의 상당부분을 해명해준다.
바울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 드러냈던 진정한 원한을 설명해준다. 바울은 회당 참가자들 가로채기를 했던 셈이기 때문이다. 만일 바울이 단지 그의 동료 유대인들에게 말했다면, 그들은 그를 비웃을 수 있었다. 만일 그가 단지 순전한 이교도들에게 말했다면, 그의 동료 유대인들은 그를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 바울과 유대인 회당이, 그들 이방인 참가자들이라는 제3의 집단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회당은 "전통적인 유대교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한 반면에, 바울은 "기독교적인 유대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바울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그들 개종한 이교도들이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와 같은 바울의 편지들 속에 나오는 신학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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