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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주는 반(反)제국주의적 메시지”--닐 엘리옷트

본문


[2003년에 번역한 글입니다. 아래 보그 & 크로산의 글, 과 함께 {우리들의} 바울의 십자가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각주를 인터넷 형식으로 변경시켰습니다.--박원일]

▣ 역사적 바울 연구 ▣ http://historicaljesus.co.kr/xe/?mid=article&page=2&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document_srl=19169

십자가가 주는 반(反)제국주의적 메시지

닐 엘리옷트1)

박원일 역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라고 바울은 로마의 한 식민지 도시 고린도에 편지했다.

바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와의 만남이 그에게 소위 “개종”의 확신과 행동의 혁신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사도로서 일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었다.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에서 행한 바울의 선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갈 3:1)에 기초한다. 입교 예식으로서의 세례가 그에 눈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죽음을 의미한다(롬 6:1-5); 공동의 성찬, “주의 만찬,” 주의 죽음의 엄숙한 공적 선포(고전 11:26)도 마찬가지이다. 회중의 분위기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롬 14:15; 고전 8:11) 그 형제 자매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고조되어야 했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핵심임을 인식할 때, 바울이 정치적 현실에 무관심했다는 일반적 견해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요컨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신약에 기록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치적 사건의 하나이다. 예수의 십자가형이 “우리를 위한” 죽음이었다는 초기 신학적 이해나 십자가형을 장식해 온 수세기 동안의 기괴한 상상력을 동반한 신앙심 이면에는 제국주의적 테러 도구로서의 십자가라는 적나라한 사실, 곧 “복음서 중 가장 비종교적이며 끔찍한 성격”2)이 도사리고 있다. 만일 바울이 십자가를 신학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공작된 십자가 공포를 잠잠케 했거나 억제했다면, 그는 십자가 죽음을 이끌어 낸 정권의 이권에 맞게 “십자가의 도(word of the cross)”를 조화시킴으로 예수의 죽음을 신비화했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마틴 헹겔의 로마제국 십자가형 연구는 십자가형의 정치적 중요성을 두드러지게 해 주었다.3) 극악한 범죄에 대한 사형 수단으로서의 십자가형은 “로마의 최고 형벌”이었지만,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하층계급(후밀리오레스 humiliores)이었으며, 상층계급(호네스티오레스 honestiores)은 참수형이라는 보다 ‘인간적’인 형벌을 받았다”. 십자가형은 “노예들에게 가한 전형적 형벌”로 “무엇보다 골칫거리 방지책”으로 쓰였다. 그 대표적 예로는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에 반역한 6천명의 노예를 십자가형에 처한 사건이다. 로마의 캄푸스 에스퀼리누스에 노예들의 십자가형벌을 위한 특정의 장소가 있었는데, 헹겔은 이를 예루살렘 밖 골고다에 비교했다.4) 로마 제독을 살해한 노예 4백 명을 처형하면서, 하층계급의 대단위 항의를 받자, 로마 법률가 가이우스 캇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법정에서 설명했다: “그 인간쓰레기는 공포 외에는 다스릴 수 없다”(Tacitus, Annals 14.42-45).5)

로마 시민이라도 반역 행위로 인해 “시민권 보호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십자가형에 처해질 수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보다 보편적으로는, “포위하고 있던 반란의 도시를 허물고, 피정복 국가 국민의 의지를 분쇄하며, 반란군 및 소요 지역을 다스릴 전쟁과 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십자가형이 쓰였다. 그 “소요 지역”의 첫째는 물론 유대 지방이었으며, 로마인들은 1만여 명의 유대인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기원전 4년에는, 로마 장군 바루스가 혐의가 있는 자 2천 명을 처형함으로 반란을 진압했다(Josephus, War 2.5.1-3). 로마 행정 장관 휄릭스는 서기 50년대에 곳곳의 저항과 간헐적 게릴라전이 발생하자, “셀 수 없이 많은 강도들(레스타이 λησται)”을 무차별 학살함으로 종속국의 미움을 샀다(War 2.13.2: 요세푸스는 로마인들이 자신들에게 감사하지 않는 종속 국민에게 즐겨 쓰던 경멸적 표현을 쓰고 있다). 그 후계자 플로루스는 성전 기금을 약탈함으로 대대적 반란을 야기시켰고, 이에 맞선 비폭력적 항의를 ― 로마시민에 해당하는 유대인 기마병을 포함하여 ― 대규모 십자가형으로 진압시켰다(War, 2.14.6-7). 계속 이어지는 예루살렘 공격 때에 로마 장관 티투스는 하루에 5백 명씩 도망자를 십자가형에 처하기를 성밖에 “더 이상 십자가가 남지 않을 정도까지” 했다(War 5.11.1-2).6)

실제 로마 관습에서는, “채찍질, 고문, 화상, 또 불구로 만든 후에 십자가에 매달았다.”7) 티투스 군사들은 먹을 것을 찾아 성밖으로 달아나던 가난한 유대인들을 잡아, 고문하고, 채찍질하고, 성내 방어자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한다. 한 실례로, 그들은 고문당하던 피해자의 양손을 자르고 그를 성내로 끌고 와 거주자들의 항복을 촉구하기도 했다(War 5.11.5).

헹겔이 십자가형의 의의를 요약하듯, 그것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는 “전쟁 방지책으로서 갖는 최상의 효율성”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억압해야 할 집단”에게 십자가형을 집행했다.

십자가형의 잔인성이 로마인들이 확립한 질서에 있어서 예외적인 것은 아니었다. 소위 일컫는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 군사적 라이벌간의 영토확장과 경쟁을 위한 격렬한 전쟁의 종결 ― 는 문학과 종교의식에 새로운 번영의 시대, 곧 신들의 선물로 찬미되었다. 그러나 로마 석고상이 분명히 보여 주듯, 이는 군사적 정복을 통해 얻은 “평화”이다. “아우구스투스 평화 제단”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언덕(Hill of Mars)에 놓였다. 아우구스투스 때 주조된 동전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첫 번째 시민을, 전쟁에 패한 적군의 무기를 밟고 선 평화의 여신 팍스와 지구를 밟고 선 정복의 여신 빅토리아에 연결시킨다.8)

이 시대의 대부분 문학적 자료는 상류 계급의 손을 거쳐 나오는데, 그들은 “엄청난 규모로 영토를 약탈”한 제국의 “오직 탐욕”으로부터 이득을 취한 자들로,9) 이 자료에서는 땅의 분배를 최상의 칭찬과 함께 표현한다. “당연히, 제국주의적 정권은 피정복자들의 눈에 합법적으로 비취지 않았는데,”10) 이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브리톤의 입을 빌어 한 연설을 보자.


세상의 약탈자들, 파괴자의 손이 땅위에 그 대상을 찾지 못해 이제는 바다 속을 뒤진다. 그들의 적이 부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탐욕을 갖고 있으며, 상대가 가난하다면 그들은 야욕에 찼으니, 온 세상이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인류 중 그들만이 그칠 줄 모르는 호색의 눈으로 허비하고 또 탐한다. 약탈, 학살, 도적질 ― 이것들을 그들은 제국이라 잘못 부르고, 황폐를 일컬어 평화라 이름한다. 자연법칙에 의하면, 어린아이와 가족은 가장 아끼는 보물이다. 그런데도 외국에 노예로 강제 징발되어 어린아이들은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진다. 아내들과 자매들은, 군인들의 욕정을 피할지라도, 스스로 친구요 손님임을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 타락한다. 가재 도구는 헌납의 대상이 되고, 땅과 수확물은 징발의 대상이 된다. 손발과 생명은 상처 나고 우롱 당하며, 습지와 숲을 개간하는데 쓰인다. 노예로 출생하면, 평생 노예로 팔려 주인에 의해 사육된다. 하지만 브리튼(고대 영국) 제국 사람들은 자기 노예들에게 일당을 지불하고, 먹여 살렸다.11)


또한, 제4 에스라의 한 유대인의 이상(vision)에서 사자(메시아)가 로마 독수리에게 말한다.


너는, 내가 내 때를 이루고자하여 내 세상에서 다스리도록 한 네 마리 짐승 중에 남아있는 자가 아니더냐? 네 번째 짐승인 네가 이제 와서 앞선 모든 짐승을 멸하고, 온 세상을 두려움으로 휘어 감고, 온 땅을 억압하며 오랜 동안 속임수를 지니고 이 땅에 거해왔다. 네가 온 땅을 다스리면서 진리로 하지 않았으니, 네가 유약한 자를 괴롭히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를 해침이요, 네가 진리를 말하는 자를 미워하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사랑함이라. 네가 과일을 가꾸는 사람들의 거처를 파괴하고 네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자들의 성곽을 무너뜨렸다. 네 거만함이 지극히 높은 자에게 미치고, 네 교만함이 위대한 자에게 이르렀다. 지극히 높은 자가 자신의 시간표를 보니, 보라, 그들은 다했고 모든 시대가 끝났다. 그러므로 너 독수리는 정녕 사라지겠고... 네게서 벗어난 온 땅이 새 힘을 얻고, 세상을 지으신 자의 심판과 자비를 바라리라.


테러를 통해 손에 넣은 “평화”는 테러12)와 노예제도에 의해 유지되고, 끊임없는 위협, 학대, 폭력으로 지켜졌다.13) 또한, 글래디에이터 게임이라는 제의화 된 테러를 통해 제국에 반대하는 사람들 ― 전쟁포로, 유죄 판결 받은 범법자, (고대 로마) 투기장에서 구입한 노예 ― 이 정복을 재현하는 스타일로 죽는 등, 사람의 운명이 제국 대표자들의 변덕에 달렸다.14) 화려한 군사 행진 또한 종종 피정복지의 포로를 처형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15) 사상적인 면에서는, 제국주의 제의와 격식, 법정의 수사학(노예를 고문하는 것은 증거 수집을 위한 판에 박힌 일이었음), 또 로마의 지구상의 헤게모니의 “당연성”을 되새기는 교육제도가 로마의 “평화” 유지에 일조했다.16) 바로 이 테러 문명 속에서 십자가형은 없어서는 안될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이 힘의 대규모 적용 사례로는, 기원전 167년 15만 명의 에피롯 사람을 노예로 전락시킨 일, 기원전 146년의 고린도 파괴 외에 가장 잘 문서화된 서기 66-73년의 유대인 반란을 진압한 사건 등을 들 수 있다.17)


1. 예수 죽음의 정치적 성격


바울 서신은 예수의 말과 행위를 전달하는데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서신들은 이미 안정된 회중들에게 쓰여졌기 때문에, 서신에서 바울의 초기 메시지, 곧 그가 전해 받은 전통과 가르침의 내용이나 혹은 예수 전통에 관한 그의 지식의 정도 ― 몇 번의 인용 구절이 암시하는 것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겠지만 ― 를 되풀이 해야한다고 가정해선 안 된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알고자 한다고 고린도 교인에게 외친 바울의 선포를 중대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전 2:2).

그의 서신에서, 바울은 예수를 십자가로 이끈 역사적 행적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바울이 예수의 죽음의 역사적 원인들을 몰랐다거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바울과 복음서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될 위험이 있다. 바울은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예수의 말과 행위를 전하는데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이는 유대인 항쟁의 목전에서(서기 66-73년: 역자 주),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예수에게 극적인 메시아 과거사를 치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19) 그는 오히려 메시아의 미래사에 대한 열렬한 기대를 그의 회중에게 일으키는데 보다 관심이 있었다(롬 8:18-25; 고전 15:50-58[원문에는 고전 15:59-58, 역자주]; 살전 5:1-11).

복음서와는 달리, 바울은 예수가 “순종”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만족하고, 이 순종이 예수 죽음의 원인이며 바울이 밝히는 십자가 사건이다(빌 2:6-8).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의 순종은(2:6) 단지 인간의 모습을 취함에 있지 않고, 노예(2:7)라는 특별한 인간의 모습을 갖는다는 데에 있다. 그저 죽음의 운명을 갖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로마 통치하에서 노예에게나 가해질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인 십자가형을 받아들일 정도로 그가 겸손했음을 의미한다(2:8).20) 예수가 어떤 형태로 죽었는가에 대한 강조가 ― 수치스럽고 공포스러운, 그러나 이면에 내포하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성격 ― 예수의 죽음을 모호하게 하고 신비화시키려는 바울의 노력과 대조를 이룬다. 바울에게 있어, 십자가는 예수를 죽인 세력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확실한 서명(signature)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형에 관련된 악인들을 밝히는데 전혀 무관심한 듯 보이며, 또한 왜 그들이 그렇게 했는가하는 역사적 이유도 제시하지 않는다.”21)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예외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살전 2:15-16에서 “유대인들“이 “주 예수“의 죽음에 대해 비난을 받고 ― 유대인 항쟁의 목전에서 기독교 서기관에 의해 삽입된 구절로 여겨짐 ― 또 하나는 고전 2:8에서 바울은 “이 시대의 통치자들(개역: '이 세상의 관원들'; 아르콘테스 αρχοντες)”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밝힌다. 이 구절은 바울 서신에서 예수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을 암시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분명 우리의 주의를 끈다.

“이 시대의 통치자들”이란 구절을 통해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이 구절은 바울의 비약적이며 생략된 문체의 하나이다. 더 골치 아픈 사실은, 그가 아르콘(αρχων)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는 고대 헬라어와 코이네 헬라어에서 폭 넓은 의미로 쓰인다. 비록 신약 다른 곳에서는 아르콘테스(αρχοντες)가 인간적 통치자를 가리키지만,22) 이 단어는 초인간적 존재를 가리킬 수도 있다(예, 단 10:13, 20에서 페르시아와 희랍 제국 뒤에 있는 천사 모습의 “왕들”).

하지만 그 전후 문맥으로 판단할 때, 분명히 바울은 유대의 정치적 긴장감이나 2십 년 전 빌라도의 흥망성쇠를 조사하는데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바울의 예수 십자가형 이해 배경은 유대 묵시문학의 신화적 상징주의이다. “만세 전”(고전 2:7)에 선포된 하느님의 지혜가 없어질 이 세상의 통치자들(카타르구메논 καταργουμενων, 2:6)을 예수의 십자가 안에 가둬 넣었다. 여기 쓰인 단어가 고린도 전서 끝 부분의 예언에 반영되었다: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것이요”(15:24). 동사 “멸하다”(카타르구메논 καταργουμενων, 2:6; 카타르게세 καταργηση, 15:24)와 그 연관된 명사 “통치자”(아르콘테스 αρχοντες, 2:8), “지배”(아르케 αρχη), “권세”(엑수시아 εξουσια), “능력”(두나미스 δυναμις) 등에서 보이는 대구법(對句法)은 고전 2장 8절의 “이 시대의 통치자들“이란 구절이 하느님께 대적하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 ― 사망이 마지막 대적이다, 15:26 ― 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을 제시한다. 더욱이 그 언어는 다니엘서의 묵시문학적 단어들을 반영하는데, 하느님이 “지배”(아르케 αρχη), “통치”(바실레이아 βασιλεια), “권력”(이스쿠스 ισχυς), “명예”(티메 τιμη), “영광”(독사 δοξα)을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주며(단 2:37, 칠십인역), 마지막에는 하느님이 세상의 모든 다른 왕국을 “부수고 멸할” 왕국(바실레이아 βασιλεια)을 세운다(2:44).

“종교사학파”(religio-historical school)의 영향을 받은 초기 연구는 고린도전서가 영지주의 모티브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초자연적 힘과 그를 통해 “구세주”가 내려와 구원을 이룬다는 영지주의적 도식에다 “이 시대의 통치자들”을 포함시킨다.23) 그러나 보다 최근의 연구는 이런 해석을 단호히 비판하는데,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적 구세주란 개념은 100년 혹은 그 이후 영지주의 문학에 처음 선보이는 패턴 ― 종종 바울서신에 기초한 패턴 ― 을 바울의 시대로 소급 투사한 것임을 밝혀냈다.24) 최근의 고린도전서 2장 연구는 바울의 언어를 유대인의 종말론적 사상 세계에 연결시키고, “하느님의 지혜를 묵시론적 권세”로 보는 경향이 있다.25) 고린도 전서 2장이야말로 바울서신에서 그의 묵시 사상을 엿보는 가장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26)

“묵시 사상”(apocalypticism)이란 물론 학자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개념이며, 고대 문서와 관련된 그 정확한 뜻은 계속 논쟁 중이다.27) 우리는 고린도전서 2장과 15장에서 특유의 묵시론적 경향 ― 즉, 인간 역사의 배경에는 하느님과 악의 권세간의 우주적 투쟁이 있다고 보는 이원론적 생각 ― 인 대칭적 언어를 살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시대의 통치자들” 혹은 “지배, 권세, 능력”의 인용문은 악한 통치자들 세력 하에 놓인 현재를 바울이 경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통치자들이 “멸망당하다”(카타르구메논 καταργουμενων, 2:6)는 표현은 바울이 십자가에서 악의 권세의 멸망의 시작 ― 단지 시작 일뿐이지만 ― 을 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바울이 서신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멸하고 모든 것이 메시아에게 복종한다고 말할 때, 바울은 조만간 하느님 승리의 끝을 기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28)

바울이 예수 죽음을 우주적 투쟁의 결정적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역사의식과는 맞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바울 시대의 다른 저자들은 유대에서 빌라도의 만행을 신문 잡지처럼 자세히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에게 있어서는 빌라도의 개인적 행위가 “이 시대의 통치자들”이라는 묵시적 범주 안에 용해된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십자가형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29) 바울과 동시대 사람들인 두 유대인 작가 ―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 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가이우스께 보내는 사절단������(Embassy to Gaius)에서 저자 필로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선천적으로 완고하고 방자와 잔인으로 똘똘 뭉치고 … 뇌물과 모욕, 강도질, 난폭 행위, 무분별한 상해, 늘 반복되는 재판 없는 처형, 끊임없는 엄청난 잔인성”(301-2)의 죄를 갖고 있다. 여기서 그는 빌라도의 잔혹성은 티베리우스의 의도를 거스른 것으로 밝힌다. 티베리우스는 “각 도성에 있는 우리 나라에 속한 이들에게 위로의 말하기”와 유대인과 그들의 풍습을 존중할 것(161)을 지방장관들에게 지시했다. 필로는 티베리우스의 전임자에게 최상의 찬사를 할애한다: “그는 먼저 덕과 행운으로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얻고, 땅과 바다 세상 끝 어디라도 평화를 널리 퍼뜨린 사람이다”(310). 필로의 요지는 빌라도와 같은 배교자의 만행조차, 성전 안에 자신의 신상을 세우도록 명한 가이우스의 끔찍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심각한 성격적 결함을 가진 빌라도의 약탈과 전임 카이저들의 자비심 많은 정책을 비교하고 있다. 필로의 문체가 시사하는 바에 의하면, 그 자신은 빌라도나 가이우스 같은 이들의 월권행위가 사라진다면, 로마의 지시를 평화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전 건축 기금을 몰수한 빌라도에게 항의한 유대인을 그가 대량 학살한 사건을 전하면서, 요세푸스는 빌라도 군사들이 “빌라도가 명령한 것보다 지나치게 상해를 입혔다”며 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자제한다(Antiquities 18:60-62). 예수의 십자가형에 관해서는, 아마도 당시 “크리스천 족속”이 존속하고 있었기에, 요세푸스는 단지 “우리 가운데 있는 고위층의 고발에 근거”해 빌라도가 예수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정의에 관한 문제는 이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다. 티라타나에 사는 사마리아 주민들을 빌라도가 대량 학살한 후, 사마리아인 지방의회는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빌라도가 반역자를 억압한 것이 아니고 피난민들을 학살했다고 고발한다. 비텔리우스는 빌라도를 로마에 보내 고발에 응하게 하나, 그 전에 빌라도는 죽는다. 요세푸스는 더 이상 이 사건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18:85-89). 이 ������고대사������ 책에서 요세푸스의 관심은 유대인 선동자들의 무절제한 폭력을 강조하는 것이며, 이들은 개인적 욕심에서 출발한 잘못된 혁명주의적 분위기를 유대에 조성하여 수십 년간 재해를 초래하고 끝내는 전쟁을 불렀다는 것이다(Antiquities 18:6-10).30) 요세푸스는 유대에 대한 로마 정책을 물을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두 작가 모두 로마 관습의 합법성을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유보를 보이지 않는다. 바울에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공무원의 잘못된 행위 ― 로마 정의 실현의 실패 ― 가 아니라, 묵시적 사건이다. 이는 “이 시대의 통치자들” 곧,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 ― 지방장관, 왕, 황제 ―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하느님께 대적하고 “마지막 때” 메시아에 의해 멸망할 운명에 있는 초자연적 “권세들”을 보여 준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이 세상의 권세들을 벗기고 타파하려는 하느님 계획의 수수께끼이다.”31)

바울의 예수 십자가에 대한 관점은 유대 묵시적 신화에 있는 상징주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상징적 배경을 “역사의 적나라한 사실들” ― 마치 그런 것들이 중립적 관찰자에게 입수 가능했던 것처럼 ― 에다 비교하는 것은 요점을 벗어난 것이다. 혹 십자가의 폭력을 밝혀줄 중립적이며 개관적 위치가 있었다 해도, 바울이나 필로나 요세푸스는 그런 위치를 차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바울의 십자가에 대한 묵시적 이해를, 아무리 희미할지언정 로마 제국 신화에 암시된 바대로의 로마 통치의 합법성은 인정하고 있는, 유대에서 일어난 폭력들에 대한 다른 이해들과 비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빌라도를 꼬집어 말하지 않은 채 “십자가의 도”를 외치는 데에 우리가 놀라는 게 아니고, 그의 정죄가 빌라도를 넘어 하느님께 대적하는 천지의 모든 권세를 포함한다는 데 우리가 놀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형에 대한 언급 때문에 예수 죽음의 상징적 이해가 역사 속에서의 정체성을 잃고 온전히 저 세상 드라마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바울은 십자가를 “탈(脫)국가화(denationalizing)” 한 것이 전혀 아니라, 말하자면 그것을 국제화했다(internationalized). 유대의 골칫거리로부터 수천 마일 떨어진 고린도의 로마 식민지 백성들에게, 유대에서 일어났던 십자가 사건을 항시 기억하는 삶을 살라고 바울은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바로 그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권세들의 속한 종말을 보이고, 또 “이 세상의 계획”을 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고전 7:31).


2. 바울과 “권세들”


“십자가의 도”가 주는 정치적 힘은 엄청나다. 우리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부분적 이유는, 학자들이 그 의미를 종종 무디게 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로마서 5-8장에 나오는 ― 불트만이 명명한 바 “이 시대의 권세들: 법과 죄와 사망”이라는 ― 보다 “인간학적”이고 “실존론적인” 이해에 비해 고린도 전서의 이 구절은 바울의 사상에 “별로 핵심적이지 않다”고 하여, 그 의미를 경시해 왔다.32)

바울 사상이 참으로 묵시론적이라고 해석하는 경우에도, 고린도전서 2장과 15장에서 찾을 수 있는 권세들과 하느님의 투쟁이라는 우주적 지평은 여전히 경시할 수 있다. “묵시론적 바울” 옹호자 J. 크리스챤 베커는 묵시적 신화로부터 크게 바울을 분리하였으며, 유대 묵시문학을 그가 얼마나 “변형시켰는가”를 강조했다. 첫째, 베커는 주목하기를, 바울은 “묵시론적 시간표 ― 천상 구조의 묘사, 천사와 악마 이야기 ― 에 관심도 없고, 복 받은 자의 보상과 악한 자의 고통에 기뻐하지 않는다.” 둘째, “전통적 묵시론적 술어”가 등장할 때에도(롬 8:38-39, 고전 2:6-8, 15:24-28), 바울은 이런 모티브를 “아껴 쓰고” 있으며, 그것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 주된 묵시론적 힘이란 인간의 상태,” 즉 로마서 6-7장에 보이는 “죽음의 ‘장(場)’, 죄, 율법과 육체”를 결정 짖는 존재론적 권력들이다. 베커는 바울 자신의 십자가의 묵시론적 이해를 후반부 서신에서 찾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제 묵시적 동맹 세력의 타파를 명시한다”고 쓰고 있다.33)

그러나 바울은 실존론적 권세인 죄나 사망이나 율법이 타파되었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가 다시는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는 죄가 권세로써 존재하기를 멈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이다(롬 6:2, 6).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자유롭게” 됐는데, 이는 율법이 효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고(롬 3:31; 7:12, 22, 25에서 바울이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 그리스도인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롬 7:1, 4).34) 더욱이 바울은 사망의 우주적 권세는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고전 15:26). 만일, 바울에게 있어, 하느님께 대적하는 우주적 권세의 장이 “유기체적으로 서로 연결돼 작용한다면… 어떤 권력도 따로 분리해 살필 수 없으며,” 이 권력들은 (사망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도인을 더 이상 다스릴 수 없을지라도, 아직 계속 활동하고 있으며 하느님께 불복종하고 있다.

바울이 보다 더 “전통적인 묵시론적” 언어를 구사할 때에도, 그는 권세들이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고 확실히 주장한다(고전 15:24). 이 주장이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의 논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35) 그러므로 왜 한 서신(고린도전서)에서 그렇게 중요한 묵시적 개념이 다른 서신(로마서)의 소위 말하는 인간학적 범주에 종속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고린도 전서에 이해된 권세들은 실제는 로마서의 권세들로 “재해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임의적이며, 이에 근거하여, 고린도 전서 15장의 의도와 관계없이, 권력들이 결정적으로 타파되었다고 바울이 이해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위(僞)바울 작품인 골로새서, 에베소서 본문에 근거해 이런 판단을 지지한다면, 얼마나 임의적이겠는가!36)

베커가 묘사하는 “전통적인 묵시론적 요소”가 강조되지는 않을지언정, 바울 서신에 실제로 나타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의 “주의 말씀”은 “묵시론적 시간표” 상의 시작이며, 천사장의 나팔소리는 그 끝이다. “천상의 구조”가 “셋째 하늘”(고후 12:2)에까지 올랐던 이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고, 그는 단지 “환상과 계시”의 내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자제했을 뿐이다.37) 마지막으로, 바울은 행위에 따른 심판(롬 2:6-11)과 악인에 대한 하느님의 보복(롬 2:5; 12:19-20)을 편하게 받아들였다.38) 이 모든 관찰의 결과는 바울의 사상을 보다 더 묵시론적 전통에 놓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2장과 15장의 묵시론적 관점을 바울 사상에서 변두리로 밀쳐낼 이유가 없다.39)

“하느님의 해방 전쟁”이 바울 신학의 한 주제임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 입각해 바울의 권세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일 수가 있다. 위(僞)바울 서신들은 이미 바울의 입장을 사도시대 이후의 교회의 안건에 맞추고, 어느 정도 제국의 이익에 합당하게 십자가의 도를 조정했다. 고대 고린도의 역대 로마 군주의 귀에, 그리스도가 이미 권세들을 타파했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듣기도 좋고 해롭지도 않은” 신화로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요”라는 크리스천의 확신을 들었을 때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40)

이런 해석은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권세들에 대한 바울의 신학이 아니다. 아래에서 고린도 전서의 권세들에 대한 바울의 신학과 위(僞)바울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신학의 차이를 강조하고자 한다.

1. 바울 자신은 “권세들”의 기원에 대해 추측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음 받았다”(골 1:16의 요지)는 주장은 바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바울은 하느님이 나라들을 “하느님의 아들들,” 즉 “각 나라의 천사들”(신 32:8-9)에게 분배했다는 신화나 “타락한 천사”의 신화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41)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전부는, “한 사람으로 인해 사망이 들어오고”(고전 15:21; 롬 5:12, 18), “하느님의 피조물을 허무에 굴복케 하시고”[마타이오테스 ματαιοτης], 또한 “그 피조물이 항상 썩어짐에 종살이[프토라 φθορα]"(롬 8:20-21)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단지 지구상의 정치적 권력 이면에 영적 권세가 있다고 묵시론자들과 같이 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바울은 권세들의 원상 복귀를 말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멸망” (RSV) 혹은 “무력화,” 그들의 카타르게시스 καταργησις(고전 2:6; 15:24)를 말한다. 이 언어는 묵시문학의 색깔을 드러내며, 거기에선 하느님이 자신의 성도들에게 주권을 주고(단 7:22, 27), 또 “이들 다른 나라들을 쳐서 멸한다”(2:44). 더욱이 바울은 이 신의 승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 “마지막 때”에다 둔다(골 2:15 비교).

3. 바울은 이 권세들이 하느님을 늘 대적한다고 묘사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사망은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이다(고전 15:26). 마찬가지로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들”의 분명한 의도는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는 것”이다(롬 8:38).

4. 바울 서신에서는, 하느님(“천사들, 권세자들”)을 대적하는 “하늘” 권세들의 일은 인간적 도구, 곧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고 묘사된다(롬 8:38). 바울은 여기서 “인간의 악한 의도가 꾸밀 수 있는 것들”인 “일차적 인간 권력의 제재(制裁)”를 열거한다.42) 이런 세상의 제재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이렇게 설득력 있게 표현된 로마서 8장의 구절이, 곧 이어서, 자신의 청중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기억하라는 바울의 간청에 자리를 내어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43) 이 요청의 동기는 로마 성내에서 유대인 권리를 엄하게 제한하려는 당시 로마제국의 법안과,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로마 통치하의 팔레스타인에 행해진 만행이었다.44)

5. 권력들이 계속해서 지구상에 폭력과 비참함을 가져온다는 생각에 입각해, 바울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 “하늘의 것”(골 3:2 비교)을 관조하며 세상의 비참함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억압받는 피조물을 기억하며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성령이 크리스천들을 우주적 해산의 고통으로 이끄는데, 그들은 마치 권력의 속박으로부터 자신들의 육체적 해방뿐 아니라 온 피조물 자체의 석방을 기다리는 자들과 같다(롬 8:22-23). 이런 성령의 체험이 바울에게 ― 또 바울이 바라기는 그의 독자들에게까지 ― 자신의 동족, 곧 장자 권한으로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염원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큰 근심과 끊이지 않는 고통”을 발하였다(롬 9:1-5).

6. 골로새서에서 말하듯, 그리스도 안에서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켜, 승리함으로 대중의 본보기로 삼으셨다”와는 반대로, 바울은 승리 행진의 비유를 삼가고 오히려 지상의 권력자들 손에 당한 자신의 육체적 학대를 말한다. 아시아에서 당한 개인적 고난(θλιψις) 후에야,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또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느꼈다”(고후 1:8-9, [원문에는 고후 2:8-9, 역자주]).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승리 행진에 “이끌려” 가고 있다고 묘사하면서, 십자가에서 로마 형벌의 피해자만 보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악취”가 떨친다고 한다(고후 2:14-16; 4:7-12 비교).45)

결론적으로 내 생각에는, 학계에서 “권세자들”에 관한 연구에 큰 비중을 차지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입장과 달리, 바울의 묵시적 언어는 예수의 죽음의 의의를 지상의 영역에서 천상의 영역으로 옮겨 놓길 거부한다. 권력자들은 하느님의 손에 결정적 패배를 당하는 “마지막 때”까지 피정복상태를 지속한다는 것이 정확한 바울 스스로의 주장이며, 이런 이해는 권세자들에 대한 옹색한 영적 해석을 거부한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지상의 억압 도구를 통해 세상을 속박한 모든 권세자들을 향한 하느님의 마지막 “해방 전쟁“의 전초전으로 이해한다. 예수의 죽음이 하느님의 지혜에 대적하는, 처치 곤란한 이 시대의 통치자들의 탈을 밝혀내지만, 그들은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

더욱이 바울은 권력자들의 끊이지 않는 치명적 위협들로부터 자기 자신의 해방에 대해 설득력 있게 말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이 자유로움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표시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후 4:10). 바울은 이 자유로움과 함께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그에게는 예수 부활로 이 소망이 확인되었지만 ― 묵시론적 소망 을 가지고 견뎠다.

십자가는 권력자들이 “예수를 자신들이 뜻하는 인물로 만들 수도 없고 혹은 그를 저지할 수도 없었음”을 노출시킴으로 죽음의 권력자들로부터 그들의 “마지막 제재”를 빼앗아 버렸다. “십자가상에서 이 어리석은 권력가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비밀, 그 근본적 폭력의 비밀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해 버렸다.”46) 그러나 이런 통찰력은 바울에게는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가능했는데, 왜냐하면 십자가 형벌 자체는 근본적 폭력의 논리를 반복할 뿐 노출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하느님의 궁극적 승리를 가리키고, 권력자들의 조속한 패배를 내보인다. “묵시론적 배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바울 사상의 시종일관한 핵심을 이룬다.”47)

예수의 죽음을 논하기 위해 바울이 사용하는 신화적 언어는 고린도 전서의 분명한 목적을 설득력 있게 달성할 뿐 아니라, 또한 “통치자들” 손에 의한 예수 죽음의 의의를 효율적으로 확대한다. 즉, 한편으로는 “사라져 가는 이 시대의 형체”(7:31)에 대하여, 또 한편으로는 유대와 자신들 공동체의 “가난한 사람들”(11:22)에 대하여, 먼지투성이의 유다로부터 수백 마일 떨어진 성대한 로마 식민지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친다. 십자가 사건은 로마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며, 크리스천 회중 중에서 부유하고 명성 있는 고린도 교회는 이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새롭게 가난한 자들과 상통해야 한다. 헹겔이 로마 상류계급과 관련해 기록하고 있는 십자가 처형 문제의 엄청난 혐오감을 염두에 둘 때,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 말하는 바울의 주장은 결코 십자가의 “정치적 모습을 축소시키는 행위”일 수가 없다.


3. 십자가와 하느님의 정의


예수의 죽음에 대한 바울의 시각은 철저히 그리고 심오하리만큼 묵시론적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억압과 핍박이라는 구체적 역사 현실을 이해하고 거기 대응하려고” 노력한 제2 성전 유대교(Second Temple Judaism)의 일반적 조류에 참여하고 있다. 묵시적 사회현상(apocalypticism)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자신들의 전통에 확고히 서게 하고, 그들을 억누르는 체계적인 시도에 저항하게 했다.”48)

십자가에서 하느님은 이 시대와 이 시대 통치자들의 지혜를 폐하였다. 더욱이 통치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살아났기 때문에, 통치자들은 스스로 멸망 받을 자로 낙인찍었다(고전 2:6-8; 15:51-58). 그 결과 크리스천은 더 이상 사라져 가는 이 시대의 형체(7:31)에 결박되지 않고, 약한 자를 택하신―있는 것들을 폐하시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신(1:28)―하느님께 복종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 묵시적 신학은 언약의 백성을 위한, 또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하려는, 하느님의 오랜 계획을 옹호하는데 그 초점을 둔다. 바울 신학의 핵심에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양심에 화인 맞은 개인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이방인과 유대인을 포함하는 운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의 물음은, 동료 묵시론자들처럼,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어떻게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49) 신앙이 돈독한 동시대 사람과 같이, 바울에 있어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 언약의 신실성 위에 서 있고,50) 바울이 느끼는 “곤경”은, 일세기 삶 속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스라엘의 억압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헤롯이나 빌라도가 다스리는 한, 이스라엘은 여전히 “포로”의 저주 속에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언약 신학의 틀에 미치지 못하는 어느 것도 바울의 사상을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51)

바울의 십자가 교리는 억압받는 자들을 향한 하느님의 정의와 편애의 교리이다. 로마 압제자들의 손에 의한 메시아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통해, 하느님은 이스라엘 포로 역사를 되풀이하여 결정적 클라이맥스에 놓는다. 십자가 위에서 죽은 한 노예의 죽음 속에 모든 피조물의 노예 상태가 담겨져 있다.

바울은 십자가가 본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억압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모호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 묵시적 사회현상이라는 렌즈를 통해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단지 이런 시각은 잘 모르면서 피의 제사라는 희생 제사의 논리에 익숙한 이방인 교회는 바울의 메시지를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贖罪) 제의(祭儀)(히브리서) 혹은 이스라엘 권리 박탈 헌장(바나바 서신)으로 탈바꿈시켰다. 바울 서신 자체가 바울이 자기 생전에 이방인 교회 가운데 이런 경향이 있음을 이미 감지하였고 그것에 반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 이 글은 Paul and Empire: Religion and Power in Roman Imperial Society (ed. Richard A. Horsley; Harrisburg, P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67-183 (제 10장)에 실린 엘리옷트의 글을 완역한 것이다. 원서에 쓰인 헬라어 및 라틴어의 영어 음역(transliteration)이 한국어 음역에서는 그 알파벳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으로 인해, 한국어 음역에 헬라어, 라틴어를 더 했다 (예를 들어, ekklēsiai를 에클레시아이 εκκλησιαι)―역자주.


2) J. Christiaan Beker, Paul the Apostle: The Triumph of God in Life and Thought (Philadelphia: Fortress, 1980), 207.


3) Martin Hengel, Crucifixion, trans. John Bowden (London: SCM Press, 1977); The Cross of the Son of God (London: SCM Press, 1986)에 The Son of God와 The Atonement등과 함께 재 인쇄. 인용은 재 인쇄판을 따름.


4) Hengel, Crucifixion, 125-37.


5) G. E. M. de Ste. Croix, The 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 from the Archaic Age to the Arab Conquest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409에 인용.


6) 위의 책, 138-42.


7) Beker, Paul the Apostle, 206 (Josephus, War 5.44.9을 인용).


8) 팍스 로마나에 관한 보다 덜 마술적 관점은 막스 역사가 de Ste. Croix에 나온다. 전쟁의 종결은 “이태리 군사들의 고갈로 인한 필연적 결과로...너무 많은 이태리 군사들이 너무 오랜 동안 싸워 왔다‘(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 358).


9) 위의 책, 355.


10) Richard A. Horsley, Jesus and the Spiral of Violence: Popular Jewish Resistance in Roman Palestin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7), 20-29. 호슬리는 Dom Helder Camara, Spiral of Violence (London: Sheed & Ward, 1971), 29-31을 인용.


11) Klaus Wengst, Pax Romana and the Peace of Jesus Christ, trans. John Bowden (Philadelphia: Fortress, 1987), 52-53.


12) Horsley, Jesus and the Spiral of Violence, 29.


13) K. R. Bradley, Slaves and Masters in the Roman Empire: A Study in Social Control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Orlando Patterson, Slavery and Social Death: A Comparative Stud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2)를 보라.


14) 대표적 문헌으로는 L. Robert, Les gladiateurs dans ㅣ‘Orient grec (Paris: Champion, 1940)가 있다.


15) Paul Duff, “Processions,” Anchor Bible Dictionary, vol. 5, ed. David Noel Freedman (New York: Doubleday, 1992), 469-93.


16) 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 제 7장, de Ste. Croix의 논문 “Class Struggle on the Ideological Plane"을 보라. 황제 숭배에 관하여는, Duncan Fishwick, “The Development of Provincial Ruler Worship in the Western Roman Empire," ANRW II:16:2, ed. H. Timporini and W. Haase (Berlin and New York: de Gruyter, 1972ff.), 1201-53.


17) De Ste. Croix, 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 344.


18) 바울은 종종 기독교인이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가르침’을 말한다(텐 디닥헨 την διδαχην, 롬 16:17; 투폰 디닥헤스 τυπον διδαχης, 롬 6:17; 타스 파라도세이스 τας παραδοσεις, 고전 11:2; 톤 로곤 아코에스 투 테우 τον λογον ακοης του θεου, 살전 2:13. 바울과 예수 전통의 만남에 대한 자세한 검토로는 Joseph A. Fitzmyer, Paul and His Theology: A Brief Sketch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89), 32-34를 보고 거기에 있는 문헌을 참조.


19) Paula Fredriksen, From Jesus to Chris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8), 제 3장, 9장.


20) Ernst Käsemann, “The Saving Significance of Jesus' Death in Paul,” Perspectives on Paul (Philadelphia: Fortress, 1971), 36; N. T.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Minneapolis: Fortress, 1992) 제 4장을 보라.


21) Charles B. Cousar, A Theology of the Cross: The Death of Jesus in the Pauline Letters (Minneapolis: Fortress, 1990), 26.


22) 눅 23:13, 35; 24:20; 행 4:8-10, 26; 13:27-28; 요 7:26. Walter Wink, Naming the Powers (Philadelphia: Fortress, 1984), 40를 보라.


23) 불트만은 이 구절이 영지주의 구세주 신화를 가리킨다고 본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Scribner's, 1951], 1:175, 181). 또 다음 책들을 보라. H. Conzelmann, First Corinthians,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5), 61; Gerhard Delling, “archō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 Gerhard Kittel, trans. G. W. Bromiley (Grand Rapids: Eerdmans, 1964), 1:488-89; Martin Dibelius, Die Geisterwelt im Glauben des Paulus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09), 89(Wink, Naming the Powers, 40에 인용).


24) C. Colpe, Die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 Darstellung und Kritik ihres Bildes vom gnostischen Erlösermythus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1); 콜페의 연구에 기초한 영어로 된 비슷한 작품으로 Edwin Yamauchi, Pre-Christian Gnosticism: A Survey of the Proposed Evidences (Grand Rapids: Eerdmans, 1973)가 있고, 다음도 참조하라: Simone Pétrement, A Separate God: The Christian Origins of Gnosticism, trans. Carol Harrison (San Francisco: Harper San Francisco, 1990). 바울이 프뉴마티코이(πνευματικοι)와 쑤키코이(ψυχικοι)를 후대의 영지주의자들과 다르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피어슨의 주장은 고린도전서의 영지주의적 해석을 약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Birger Pearson, The Pneumatikos-Psychikos Terminology in 1 Corinthians: A Study in the Theology of the Corinthian Opponents of Paul in Its Relation to Gnosticism (Missoula: Scholars, 1973).


25) E. Elizabeth Johnson, “The Wisdom of God as Apocalyptic Power," in Faith and History: Essays in Honor of Paul W. Meyer, ed. John T. Carroll, Charles H. Cosgrove, and E. Elizabeth Johnson (Atlanta: Scholars, 1990), 137-48.


26) Judith Kovacs, “The Archons, the Spirit, and the Death of Christ: Do We Really Need the Hypothesis of Gnostic Opponents to Explain 1 Cor. 2:1-16?[원문에는 1 Cor. 21:6-16, 역자주]" in Apocalyptic in the New Testament: Essays in Honor of J. Louis Martyn, JSNT Supplement 24, ed. Joel Marcus and Marion L. Soards (Sheffield: JSOT Press, 1989).


27) Paul D. Hanson, A. Kirk Grayson, John J. Collins, and Adela Yarbro Collins, “Apocalypses and Apocalypticism," Anchor Bible Dictionary, 1:279-82를 보라. 최근의 연구 노문으로 John J. Collins, ed., Apocalypse: The Morphology of a Genre, Semeia 14 (1979); David Hellholm, ed., Apocalypticism in the Mediterranean World and the Near East: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Colloquium on Apocalypticism, Uppsala, August 12-17, 1979 (Tübingen: Mohr-Siebeck, 1983); Adela Yarbro collins, Early Christian Apocalypticism: Genre and Social Setting, Semeia 36 (1986) 등이 있다. 분별력 있는 종합적 평가로 John J. Collins, The Apocalyptic Imagination: An Introduction to the Jewish Matrix of Christianity (New York: Crossroad, 1987)이 있다.


28) Kovacs, “Archons, the Spirit, and the Death of Christ," 224-25.


29) 쏘브리노(Jon Sobrino)는 예수 죽음의 “종말론적으로 색칠하기”(eschatologization)와 가난한 자 가운데 일어났던 죽음으로의 그 역사적 중대성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을 논한다. Jesus in Latin America (Maryknoll, N.Y.: Orbis, 1987), 39-40.


30) 유대와 사마리아에 있었던 이 사건들 중간에 요세푸스는 두 가지 로마에 있었던 “스캔들”을 이야기하는데, 로마 관습의 비슷한 성격을 보여 준다. 첫째는 한 원로원의 처가 이시스 성전 직원의 묵인하에 유혹에 빠졌는데, 티베리우스는 그 성전 직원과 유혹을 당한 여인의 몸종을 십자가에 죽이고 유혹한 사내(로마 시민이었음)를 귀양 보냈다. “이시스 성전 제사장들의 무례한 행위가 이 정도였다”고 요세푸스는 결론 짖는다(18:65-80). 또, 다른 원로원의 처가 한 유대인에게 돈을 떼어 먹혔는데, 티베리우스는 로마의 온 유대인을 추방시키고 사천명의 건장한 유대인 남자들을 사르디니아 군사적 공격에 끌여 들였으며―당시 유행한 “산적행위”를 제압할 목적이었다고 수에토니우스는 말한다(Tiberius 36)―도망자를 끝까지 추적했다. “네 명의 나쁜 짓거리”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요세푸스는 결론 짖는다(18:81-84).


31) Robert Hamerton-Kelly, Sacred Violence: Paul's Hermeneutics of the Cross (Minneapolis: Fortress, 1992), 82.


32) Bultman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298. 불트만과 그 추종자들은 고린도 전서 2:6-8에 있는 바울의 권세들에 관한 신학적 견해는 바울 자신의 사상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또한 묵시문학적이며 영지주의적 신화들을 비신화화하여 “자기 이해의 신뢰”(위의 책, 1:293)로 이끄는 바울 신학의 진수를 대표하는 “십자가의 도”와도 전혀 분리되어 있다고 본다.


33) Beker, Paul the Apostle, 189-90.


34) 여격(토 노모 τω νομω)의 해석에 관하여는, Neal Elliott, Rhetoric of Romans: Argumentative Constraint and Strategy and Paul'ㄴ Debate with Judaism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0), 243-45를 보라.


35) Beker, Paul the Apostle, 68.


36) 베커는 골 2:15와 에 1:20-22를 인용하여 “골로새서 저자가 이 점에 있어 바울을 옳게 이해한다”고 주장한다(위의 책, 190).


37) 바울의 환상의 경험에 대하여는 다음을 보라. James D. Tabor, Things Unutterable: Paul's Ascent to Paradise in Its Greco-Roman, Judaic, and Early Christian Contexts (Lanham, M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6); Alan F. Segal, Paul the Convert: The Apostolate and Apostasy of Saul the Pharisee (New York: Yale University Press, 1990), 2장.


38) Klyne Snodgrass, “Justification by Grace―to the Doers: An Analysis of the Place of Romans 2 in the Theology of Paul, " NTS 32 (1986): 72-93.


39) Kovacs, “Archons, the Spirit, and the Death of Christ," 224-25.


40) De Ste. Croix, 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 432 (마리아 찬가의 언어에 관하여).


41) “권세들”이란 언어의 신화적 배경에 대하여는, Win, Naming the Powers, 13-35를 보라.


42) 롬 8:35은 “단순히 ‘기근’(RSV)과 같은 환난뿐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는’ 그 ‘누군가’(티스 τις)에 의해 저지러진 일들을 가리킨다(위의 책, 48).


43) 주석학자이 별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 로마서 8장과 9장 사이의 수사학적 연계성에 대해서는, Elliott, Rhetoric of Romans, 253-70을 보라.


44) Wolfgang Wiefel, “The Jewish Community in Ancient Rome and the Origins of Roman Chrstianity," in The mans Debate, 2d ed. by Karl Donfried (Peabody, Mass.: Hendrickson Publishers, 1991). Rhetoric of Romans, 43-59의 내 논문을 보라. “The Roman Procurators A.D. 44-66" 기간 동안의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관해서는, The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in the Age of Jesus Christ, vol. 1, ed. Geza Vermes, Fergus Millar, Matthew Black, and Pamela Vermes (Edinburgh: T. & T. Clark, 1973), 455-70을 보라.


45) 개선 행렬의 비유에 관하여는, Paul Books Duff, “Apostolic Suffering and the Language of Processions in 2 Corinthians 4:7-10," BTB 21:4 (1991): 158-65; idem, “Metaphor, Motif, and Meaning: The Rhetorical Strategy behind the Image ‘Led in Triumph' in 2 Corinthians 2:14," CBQ 53:1 (1991): 79-92를 보라.


46) Hamerton-Kelly, Sacred Violence, 85.


47) Beker, Paul the Apostle, 194-98; 205-8.


48) Horsley, Jesus and the Spiral of Violence, 139.


49) “하느님의 의”란 문구에 관해서는, 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Philadelphia: Fortress, 1977), 523-42를 보라. 케제만은 이 문구는 유대 묵시문학 현상에 그 배경을 두고 하느님의 “구속-창조적 힘”을 가리킨다고 말한다(Käsemann, “The Righteousness of God in Paul," New Testament Questions of Today [Philadelphia: Fortress, 1969], 168-82); 헤이즈는 성서에서 같은 배경을 찾는다 (Hays, “Psalm 143 and the Logic of Romans 3," JBL 99 [1980]: 107-15). 케제만과는 달리, 나는 바울이 유대 언약신학을 반대하여 이 구절을 사용한 것으로 본다(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234를 보라).


50) J. Christiaan Beker, "The Faithfulness of God and the Priority of Israel in Paul's Letter to the Romans," HTR 79 (1986): 10-16.


51)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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