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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교회 가능성에 대해 - 박원일 (캐나다 한국일보: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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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평신도 교회 가능성에 대해

 

  • 김용호 (yongho@koreatimes.net) --
  •  
  • 26 Feb 2018

박원일 LA 새길교회 목사

 

평신도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말이 마치 목회자와 비교해 신앙생활에 뭔가 부족한 사람을 구분하는 신앙의 척도처럼 오해되기 때문이다. 평신도의 상대 개념은 무엇일까. 아마도 성직자가 될 것이다. 성직자가 평신도보다 신앙생활에 우월하다는 생각은 본래 평신도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다. 성직자가 없다면 평신도라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평신도를 전문 목회자, 곧 사례를 받는 사람과 구분해 사용한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신학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목회자라 할지라도 목회에 따른 사례를 받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신도, 곧  평신도처럼 여겨야 할 것이다. 어떤 금전적 사례를 받을 경우 이 사람은 교회에서 고용한 직원으로 여기게 된다. 목사가 한 교회를 수십 년 섬겼어도 은퇴하면 더 이상 같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요즘 가나안 교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교회에 안 나가는 크리스천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 스스로  교인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교회가 어떤 건물이나 단체를 말하지 않고 성서 언어 히브리어 헬라어 본래의 뜻에 따라 회중을 일컫는 말이라면 수긍이 간다. 비록 기존의 단체에 속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예수의 복음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럼 왜 이런 '가나안' '안나가'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기존의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픔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신종플루라든가 새로운 병에 대처하는 약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개발 중에 있고 인문학 사회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환경과 물음에 대처하기 위해 관계자들은 한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크리스천 교회에서는 옛 질서 처방 한 가지만으로 사람들을 윽박지르기 때문에 아픈 교인들이 새로운 처방을 찾아 교회를 떠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진단하면 교회에 건전한 신학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이다. 해결 방법이 있을까. 예전의 목회 패러다임 속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쇠퇴해 가는 교회의 재정 대부분이 렌트비 목회자 사례비 등 현상유지를 위해 소비된다. 이들 교회들은 미래지향적으로 교육과 선교에 투자할 마음도 여력도 없다. 그나마 깨어있는 교회는 비전을 가진 목회자를 찾기도 어렵다. 유수한 신학교들이 신입생이 없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 목회자에 기대어 교회 운영을 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다. 크리스천의 질을 높여 평신도가 목회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 운영이나 선교 봉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목회자 고유의 권한으로 여겨졌던 말씀과(?) 성만찬까지 평신도가 담당할 수 있을까? 물론 기존의 교회 단체 권력자들의 눈에는 이런 발상이 매우 거슬리겠지만 이것이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해결책이라면 만인제사장 원칙에 따라 모든 교인들이 함께 목회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남은 일은  평신도가 신학 신앙 체계에 있어 목회자 수준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교육하는 것이다. 신학과 전문 교육을 통해 무슨 비책을 습득하라는 말이 아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 달란트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예수의 제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크리스천 신앙인들이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다.

요즘에는 유수한 신학교 교수들이 평신도를 위해 평이하게 풀어 쓴 신학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독서토론 성경공부를 통해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신학적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고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 설교를 대신할 수 있다. 

이런 대안교회가 점점 늘고 있다.자본주의 시대에 돈의 흐름을 보면 개인과 단체의 현 주소를 알 수 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마태 6:19)

평신도 교회의 주인들은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미리 계획을 세워 헌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재정 재물의 몇 퍼센트를 교육과 선교에 할당할 것인지 몇 퍼센트를 현상유지에 쓸 것인지.  개인적으로 교육과 선교에 재정의 대부분을 할당하고 현상유지를 위해 필요한 렌트비, 유급직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면 좋겠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게 될 때 누가 가장 아쉬워할까. 평신도교회는 평신도가 주인 역할을 하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 이제는 교회의 운영을 전문 목회자의 손에서 평신도에게 돌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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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일(LA새길교회) 목사

<출처> https://www.koreatimes.net/ArticleViewer/Article/10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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