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

인간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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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직도 지난 여름 새길교회를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 보낸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 사회의 명암을 보게 됩니다.

오늘 조국 한국이 좀더 밝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쓴 <서울신문> 컬럼하나 올립니다.

즐독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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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窓] 화급한 인간화의 길/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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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공자(孔子)님은 우리가 따를 행동 원리로 의(義)와 이(利)를 대조시킨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올바른 일, 곧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고, 자기나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익이 되는 일, 곧 이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지금 세계가 거의 의(義)보다는 이(利)를 좇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富)하다는 나라에서 경제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경제지수(GNP)에만 신경을 쓸 뿐 이른바 ‘행복지수’(GNH) 같은 것은 거의 무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지만, 지금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한국에서 이렇게 경제적 이를 추구하려는 의욕이 더욱 극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위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고 물질을 이용하라는 기본 원칙과 반대로 물질을 사랑하고 그 물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경제를 위해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라는 신을 섬기며 그 신의 표정 하나하나에 따라 희비를 되풀이하고 있다. 공자님의 시각에서 보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의를 위해 사는 군자나 대인의 나라이기보다 모두 이에 올인하는 ‘소인배 공화국’인 셈이다.


맹자(孟子)님도 마찬가지다. 맹자님이 양나라 혜왕을 찾아갔다. 왕은 “선생께서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利)를 주시겠지요.”라고 했다. 이에 맹자님은 왕을 향해 왕이 이를 말하면, 지금 말로 해서, 장관·공무원·국민들이 모두 이를 좇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왕은 어찌하여 인의(仁義)를 말씀하지 않고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라 했다.


맹자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 인간은 모두 ‘네 가지 실마리(四端)’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님은 우리에게서 이 네 가지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결하게 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非人也)!”고 단언했다.



우리 주위에서 지금 남의 아픔을 보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를 포함하여 일반인들은 물론 정치인, 종교인, 경제인, 사회지도자들 중 진정으로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함께 아파함”(compassion)의 마음을 지닌 이들이 몇이나 될까?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마음은 또 어떤가? 위장전입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했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도 별로 없고, 그것이 옳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면에서는 그렇게 편법으로 사는 것을 ‘능력’이라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보라. 우리는 거의 모두 “양보는 곧 죽음이다.”하는 식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끼어들고, 이런 신념을 아침 저녁 출·퇴근하면서 실천하고 확인한다. 이런 운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 사양의 마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놓고 우리 스스로를 냉철히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금 모두 비인간화(非人間化)된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 아닌 인간들인 셈이다.


오늘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이라면 모두 힘을 합해 이 소인배공화국을 군자공화국 내지 대인공화국으로 바꾸는 작업, 비인간화된 우리 스스로를 다시 인간이 되게 하는 인간화(人間化) 작업에 힘을 합해야 하리라. 그야말로 “공자왈 맹자왈”, 너무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이상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의식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할 공동의 과제일 것이다.*

2011-10-29  26면


댓글목록

desertgardener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desertgardener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람 사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버렸습니다.

오박사님 말대로 문제를 의식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행동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크리스찬으로 산다는 것이 나타나야겠지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박소영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소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박사님 반갑습니다. 잊지 않으시고 좋은 글  올려주시셔 고맙구요

구체적인 인간화 작업 방법도 알려주세요.

좋은 글 또 또 올려주시구요

 

내년이 기다려지네요 

Soo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Soo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박사님!!!  안녕하셨어요?

진정한 인간화가 결국은 저번에 말씀해주신 "Kingdom of God in Me/Us" 인가요?

크리스천으로, 종교인으로, 아님 그냥 인간으로서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콕 찝어 이야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강추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읽고 있는데, 다음에 뵈면 꼭 싸인해 주세요, 책에다.. ㅎㅎㅎ

빨리 또 뵈용!! 

foreveryoung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foreveryoung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십여년만의 한국나들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오박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눈부시리만치 화려하게 발전한 한국의 모습에

감탄도 하고 감명도 받았지만

맘한구석 남는 씁쓸함의 정체가

오박사님 말씀하시는 인간화의 문제였나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라고 그런 문제가 없진 않겠지만

애정을 갖고 바라볼 때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다가오는 거겠지요.

다음에 오시면 우리모두의 삶속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방향을 잡아가는 작업이 시작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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